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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나침반] 새 '개콘'을 기대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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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마감할 시간이면 어김없이 웃음의 하모니를 선사하던 '개그콘서트'가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다.

'봉숭아 학당'에서 맹구 역을 하던 심현섭과 '바보 삼대'의 김대희.이태식.김준호를 비롯한 열 명의 개그맨이 콘서트를 떠났기 때문이다(정치에 무심한 시청자라면 국회의원 몇 명이 집단으로 탈당했다는 소식보다 오히려 더 놀라울 수도 있다). 명분은 "좀 쉬어야겠다"는 것이다.

하기야 매주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려면 심신이 두루 피로했을 것이다. 웃음의 연주에는 연습뿐 아니라 창작의 고뇌가 늘 수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약간의 불협화음이 들린다. 그 열 명이 모두 한 기획사 소속이라는 게 의혹의 시발점이다. 예우를 소홀히 한 데 대한 서운함의 표시가 아닐까, 제작진과의 파워게임 양상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개그콘서트'는 드라마가 점령하다시피한 시청률 상위고지에 당당히 깃발을 꽂은 유일한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KBS1과 MBC의 메인 뉴스와 SBS의 주말연속극이 버티고 있는 격전지역에서 매회 30% 전후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지루하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 연주자(개그맨)들이 정말로 열심히 한다. 웃음 만들기를 위해 살신성소(殺身成笑)하는 모습이 실로 눈물겨울 지경이다.

코미디의 세계에도 보수와 진보는 있다. "재미있는데 왜들 그러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며 흥분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양시론(兩是論)적 입장이다. 즐기는 사람이나 시비를 따지는 이들이나 두루 필요한 존재다. 코미디는 수준이 아니라 수위가 문제다.

목욕탕 물에 손을 담가본 후 어떤 이는 델 것 같아서 못 들어가겠다 하는데 누구는 따뜻해서 좋다고 하는 모양새다. 이미 탕 안에 푹 몸을 담근 사람은 "시원하다"고까지 말한다.

문제는 청소년이다. 우리 아이가 따라할까 겁난다는 걱정이 프로그램 게시판에도 보인다. 물의 온도를 가늠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성인들의 학습과 배려가 절실하다.

저질시비에 심지어 코미디 망국론이 나오는 판국이니 한동안 '개그콘서트'에서 아예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고 스스로 계몽까지 한 일이 이해된다.

누군들 모르랴. 웃음 중에 으뜸은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억지 웃음은 짜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웃음을 만들기가 좀처럼 수월치 않다. 오락시간이니 시비를 걸기보다는 시비를 가리자. 욕탕물의 온도가 체온(민망의 수위)보다 지나치게 높으면 찬 물(모니터의 조언)을 좀 넣어 중화하자.

제작진은 일단 새로운 멤버들로 녹화를 '무사히' 마쳤다고 한다. 인기 코너 '우격다짐'에서 개그맨 이정수가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온다"고 약속하듯이 그들도 새롭게 준비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게 작금의 순리다. 충분히 재충전하여 다시 콘서트에 돌아왔을 때 노장청(老壯靑)의 협주는 더욱 무르익을 것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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