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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정화운동의 봉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우리 나라 의무 교육의 실태가 지금 말이 아니라는 것은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국고의 빈곤을 핑계로 한 이른바 「교실난」이 도저히 정상적인 교육 환경을 유지할 수 없는 「콩나물 교실」에서의 수업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쯤은 그래도 약과라 할 수 있다.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국민학교의 교육 과정이 어느덧 입시 준비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기형적 예비학교로 타한지는 이미 오래이며, 또 이로 인한 이른바 「일류 학교병」은 항상 순박 명랑하고 건강한 신심을 갖춘 어린이들을 육성하는 것을 제 일차적 목표로 삼아야 할 국민학교 교육을 그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줄달음치게 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우리 나라의 국민학교 교육에 있어서는 어린이들에게 가혹할이 만큼 무거운 과외 공부를 시켜 소위 일류 학교에 많은 합격자를 낼수록 그 성가가 높아지고 치맛바람의 난무와 각종 음성적인 잡부금이 횡행할수록 도리어 「좋은 학교」라는 선망을 받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국민학교 교육의 기본 목적은 완전히 소외된 채 아동의 사고·행동·정서생활에 있어서의 두드러진 기계화 현상이 눈에 띄고, 아동체위의 저하, 교육자들의 위신 추락, 학부형들의 과중한 금품 부담 등이 쉴새없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일대 사회문제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런데 도도한 탁류와도 같은 이러한 현상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이미 고질화되다시피 한 국민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봉화가 지난 2월께부터 대구·부산 등지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국민학교 교사들 자신들에 의해서 올려지고 있음은 근래에 듣기 드문 일대 쾌보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봉화는 기보된 바와 같이 지난 3월30일 대구시내 39개 국민학교 6학년 담임 교사 대표 39명이 모여 선언한 「국민학교 6학년 담임 헌장운동」을 첫 신호로 하는 것이었다. 그 뒤 이 가냘픈 봉화는 진원지인 대구·부산 시내에서는 물론 진주·전주·광주 등지를 거쳐 서울에까지 요원의 불꽃처럼 그 지지자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10개 항목으로 된 그 헌장에서 과외 수업과 잡부금 등으로 국민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스로의 위치를 개탄하면서 이의 불식과 교육의 정상화, 교육계의 자숙을 위해 국민학교 6학년 담임교사 자신들로서 할 수 있는 10까지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들이 제시한 입시위주교육의 거부, 부독본의 알선 및 잡부금 징수의 반대, 예능 교육과 기능 교육의 중시, 비진학 학생들을 위한 취업진로지도 등은 그 하나 하나가 종래 국민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식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해오던 바를, 교사들 자신이 솔선해서 실천 단행하겠다는 것으로, 따라서 그 실천은 그것만으로도 괄목해서 기대할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올린 이번 봉화의 의의는 국민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이와 같은 직접적인 효용을 떠나서 그것이 우리 나라 교육계와 사도의 전면적인 정화운동. 그리고 크게는 우리 나라 전 사회 풍토의 정화운동으로 번질 가능성을 충분히 가졌다는 점을 우리는 특히 중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교사들 자신에 의한 자연 발생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교육계를 병들게 하고 있는 모든 반사회적 생리가 이미 고질화된 기정사실로 제념되어, 아무도 이를 당연히 광정하려는 용기를 못 갖고 있는 터에, 비록 소수일 망정, 이와 같은 근본적인 정화 운동의 횃불을 든 것이 바로 국민학교 교사 자신들이었다는 것은 이 운동이 장차 반드시 다수의 지지를 얻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담보하는 것이며, 또 마땅히 거국적인 성원이 이 운동에 보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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