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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씨 논란 속 미술관장 취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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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월 1일자로 제 2대 서울시립미술관장에 취임한 하종현(68.전 홍대 미대 교수)씨는 '뜻밖의 인물'이란 미술계 놀람에는 아랑곳없이 "나를 믿어달라"는 완곡한 말로 입을 열었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한국민족미술인협회 등 6개 문화단체가 '서울시는 하종현 관장의 인선 과정을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성명을 내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과 만난 河씨는 "처음부터 매를 들면 어쩌란 말이냐. 1년 정도 하는 걸 보고 판단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준상 전 관장이 퇴임한 뒤 그 자리가 빈 채로 미술관이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지요. 미술계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 여기고 채용 공고에 응했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한 경험은 없지만 국제적인 미술전인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도 지냈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도 했으니 나라고 못할 건 없겠지요."

전문성을 갖춘 보다 젊은 세대가 관장에 선정되기를 기대하던 미술계가 느낀 실망과 분노에 대해 그는 "나를 자꾸 때리면 시 관리들이 관장을 뭣으로 보겠느냐"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며칠 전 조촐한 취임 자리를 열면서 이명박 시장이 내게 요구한 걸 그대로 털어놨습니다. 미술관 정상화, 시민이 사랑하는 미술관, 젊은 작가들을 위한 발표장, 국제적인 도시들의 미술관과 겨눌 수 있는 수준이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미술관의 뼈대라고 했어요."

그는 시장의 미술관 구상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근사한 주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그러자면 서울시와 행정직 공무원으로부터 미술관의 조직과 전문 인력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토대부터 닦아야 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河 관장은 "독립 안 된 게 뭐 있느냐"고 되물었다. 현 미술관 형편은 그의 표현 그대로 '머리만 있고 팔다리가 마미된' 상태지만 거기에 대해 낙관 일변도였다.

관장을 뽑는 심사위원회가 서울시 국장 3명과 미술인 3명으로 짜이고, 그 결정 과정은 전적으로 서울시가 쥐고 있었는지 알았는가는 물음에도 그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었다. 이어지는 대답은 더했다.

지난 5월 이전 개관한 뒤 반 년이란 짧은 시간에 시립미술관이 전문직과 행정직 사이의 견해 차이로 들끓었던 일련의 사태를 상기시키자 그는 오히려 "전문직들에 대한 징계 사유도 일리가 있더라"고 공무원들 시각을 두둔하기 바빴다.

정재숙 기자

◇하종현씨는=1935년 경남 산청 산 화가로 59년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홍대 미대 교수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70년대 초에 한국 화단을 이끌었던 비정형 단색조 회화 흐름에서 '접합' 연작을 발표하며 그 대표 작가로 꼽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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