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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음악·영화·출판계 라틴바람 감상법

중앙일보

입력

◇ 스페셜 쿠바 1=문화 코드로서의 쿠바와 그곳의 대중음악을 보기드문 문화현상으로 국내에 상륙시킨 공로는 아무래도 영화감독 빔 벤더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올해 초 '노인 만세'의 화제 속에 개봉된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연출자 말이다. 93세 노인까지 포함한 실버 밴드의 재기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국내에 라틴 리듬을 각인시켰다. 이들의 LG아트센터 내한공연도 성공적이었지만, 이래저래 음반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논서치) 도 7만장이나 팔리면서 영어권 대중음악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꾼 '수입선 다변화'의 계기였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적이라고 한다. 월드뮤직의 변방 쿠바음악을 대중음악의 한 흐름으로 격상시킨 것은 분명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공로다. 또 다른 분위기의 쿠바음악 진수를 들려주는 5인조 밴드 '트라디시오날 아바나'의 음반 '비바 쿠바'(유니버살 재즈) 도 최근 빠른 속도로 매니어층을 파고들고 있다고 한다. 쿠바 현지 인기도 그렇고, 유럽투어 성공 덕에 아시아 시장까지 노크하고 있는 이 음반의 백미는 '검은 눈물'. 전통적 리듬에 충실하면서도 약간 느릿하게 흐르는 애상적 분위기가 일품이다.

◇ 스페셜 쿠바2=고품격 레저.스타일 전문잡지를 표방한 '도베' 11월호가 전에 없던 쿠바특집을 꾸몄다.'스페셜 쿠바'란 제목 아래 70쪽이나 할애했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체 게바라.살사에 이르는 쿠바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큼지막한 신문광고까지 냈다.'환상을 뛰어넘는 현실의 땅 아바나' '혼혈음악의 순수결정체 살사' '고정관념을 깨는 쿠바의 컬러 패션'등 몇몇 소제목만 봐도 여간 아니다. 글쎄다. 요즘 잡지동네의 가장 뚜렷한 흐름인 라이선스 잡지에서 무책임하게 유포시키는 이국취미에 불과할까 ?

그렇다면 '쿠바 바람'은 한번 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일까?

아마도 음악.영화.레저분야 등 장르별 구별없이 부는 쿠바현상.라틴 바람에 가장 속 깊은 성찰을 보인 것은 지난 주 소개된 신간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창작과 비평사) 일 것이다. 역시 느낌이나 이미지 등을 심어주는 데는 음악.영화가 한수 위지만, 정보량.균형감각에서는 출판물 만한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정복자들이 이곳 중남미 등에서 훔쳐 채워놓은 대영박물관.루브르 등에는 감탄하면서도 정작 그 물건들의 원산지에는 소홀한 게 우리네들이다. 머리 속의 지도가 한반도를 둘러싼 4강에 고착된 우리네 정치인.지식인들이 풍요로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한번 더듬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우리의 그 지독한 사대주의 몰골을 바라보며, 기형적인 우리네 머리 속 세계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게 되길 기대했다."

국내 몇 안되는 중남미 전문가인 저자 이성형씨가 책 서문에서 던진 말이다. 음미해 볼 만하다. 왜 라틴바람이 솔솔 불고 있는지, 그리고 더 세게 불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대답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시작을 음악얘기로 했으니 마무리도 그렇게 하자.

책의 저자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보다는 차라리 '리듬의 달인' 베니 모레의 음악을 추천한다. 현지에서 인기 최고라는 젊은 그룹 '로스 반 반'이나 이라케레의 음반도 강력 추천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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