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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사라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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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연극 ‘사라지다’의 한 장면. 가운데 붉은색 옷 입은 이가 박용수씨다. [사진 남산예술센터]

작품 보러 가기전 ‘박용수’(57)를 한번 검색해 보시길…. 낯선 이름이지만 얼굴 보면 알 만한 연기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사장급 정도 되는, 중량감 있는 인물을 주로 맡아왔다. 그 배우가 이 연극에선 여장 남자로 변신한다. ‘어쩜, 저리 천연덕스러울까’ 싶게 어울린다. 목소리 가늘게 하고 툭 하면 삐치는 모습이 한편으론 귀엽다.

 연극 ‘사라지다’(20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포인트다. 박용수가 연기 생활 35년 만에 트랜스젠더에 처음 도전한다. 그래서 뮤지컬 ‘헤드윅’처럼, 그의 굴곡진 인생에 방점이 찍힐 거라 짐작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비중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30대 중반 여성의 삶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여자 넷이 거실에 모여 수다를 떤다. 다들 사연이 간단치 않다. 의사인 한 명은 이혼했는데, 전 남편이 재혼을 한다. 그러면서 이 여자를 찾아와 잠자리를 갖었는데 그만 애까지 생기고 말았단다. 낙태를 고민하는 여자, 막장 드라마의 서막 같다.

 회사를 다니는 또 한 명은 동성애자이고, 소설가인 한 명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 그나마 가정 잘 꾸리고 사는 듯한 여자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어디 하나 정상인 사람이 없네’ 싶지만, 따지고 보면 누구나 이런 허물, 한가지쯤 있지 않을까.

 연극 ‘살’ ‘고래’ 등을 연출했던 이해성씨가 대본을 썼다. “정말 남자가 쓴 거 맞아?” 싶을 정도로 여성 심리묘사와 디테일이 탁월하다.

 작가는 이런 말도 한다. “우리 연극계는 감상적인 이야기를 일단 폄하하는 습관이 있다. 이성적으로 들려주는 건 머리에서만 맴돌다가 끝이 나지만, 정서를 건드리면 내 안에 오래 머물다 깊이 있는 사유까지 들어가게 된다.”

 현실적이며 공감할 수 있고 나름 반전도 있는, 거기에 사회성까지 담아낸 수작이다. 다만 한가지, 극 중간중간 사건을 해설하는 듯한 독백은 군더더기다.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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