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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장애인 채용, 이제는 질과 관리도 생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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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은 쪼금 잘한대요. 월급 받으면 가족에게 선물도 사줄 거예요.”

 한미리(19)양은 선천적으로 자폐증을 안고 태어난 3급 장애인이다. 그런 그가 2일부터 집 근처 영등포 문래도서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책을 번호나 색깔별로 분류해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일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집중력만큼은 남달라서다. 한양은 “종류별로 분류하는 게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제일 잘하는 일”이라며 즐거워했다.

 한양이 어렵사리 일을 갖게 된 건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한 ‘발달장애인 고용 창출 프로젝트’ 덕분이다. 영등포구청이 지자체 중 처음으로 올해 한양을 포함해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 5명을 정식 채용했다. 한양의 어머니 정명화(52)씨는 “취업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가 훨씬 밝아져 몸 상태도 호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양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펴낸 ‘장애유형별 고용 대책’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장애인 고용률은 36%에 그친다. 10명 중 6명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단 얘기다. 게다가 한양처럼 중증장애로 분류되는 발달장애는 취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기 힘든 탓이다. 지적장애(23.4%), 자폐장애(20.9%)의 고용률이 20%대 초반으로 장애인 중 가장 낮은 까닭이다.

 일을 시작한다 해도 금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도 문제다. 일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형편이다 보니 처음부터 장애 특성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를 찾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현재 발달장애인의 평균 근속연수는 3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효성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팀장은 “대다수가 단순한 일을 맡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며 “이들에게도 ‘경력’이란 걸 쌓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의 어머니도 “발달장애인은 30대가 되면 다들 복지관에 모여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우리 미리가 30대, 40대 나이에도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일에 푹 빠져 있지만, 한양의 원래 꿈은 ‘바리스타’다. 지금은 배울 곳도, 일할 곳도 마땅치 않아 꿈으로만 갖고 있다고 했다. 꾸준히 돈을 모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카페를 차리겠다는 욕심도 있다. 장애인도 꿈꾸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희망과 내일이 있는 사회다. 한양이 내리는 커피를 마셔볼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무모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