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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사이공」늪지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월남리창>
월남의 남부지방을 가로지르는「메콩」강과「사이공」강은 질펀한 들판을 멋대로 후벼놓아 발길이 닿기 힘든「정글」지대·기동력을 자랑하는 현대전의 전술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서로 뒤엉긴 수로들은 늪지대를 탁류로 휘말고 있어「베트콩」들에게는 천연적인 온상지가 되고있다.
기자는 최근「투에·상」(20)이라는「사이공」대학생과 함께「사이공」시 맞은편에 보이는 수로에 들어가 보았다. 「사이공」시내에서 마주 바라보이는「사이공」강의 대안, 「투티엔」이라고 불리는 이곳도 역시 걸어다니기 힘든 늪지대- 「베트콩」이 활개치는 곳이다.
「사이공」과「투티엔」을 잇는 교통수단은 조그마한 목선에「모터」를 단 것 몇 척과 커다란 발동선 1척-. 이 배를 타고 도도히 흐르는 흙탕강물을 건너노라면 한국에서 흔히 듣던「나룻배참사」가 연상되나 월남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그마한 배에 잔뜩 매달려 간다.
하오 3시 반 선임「남각」(50전)을 치르고 약 2백「미터」폭의 강을 건넜다. 대안에 발을 올려놓자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보다도 이상한 눈초리로 쏘아보는 듯한 여러 시선들에 더 신경이 쓰였다. 「사이공」을 강하나 격해두고 있지만 이곳은 마약·밀매음·도박이 공공연히 성행되고 있는 범죄소굴. 정부의 힘은 낮에만 미치고 밤에는「베트콩」이 마음대로 횡행하는 곳-낮에도 수로를 따라 조금만 나가면「베트콩」이 출몰한다는 곳이다.
첫눈에 띄는 것은 가난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지쳐빠진 주민들의 모습과 썩어 가는 오물로 더렵혀진 길들이다. 낮선 손에게 던지는 야릇한 눈총을 의식하면서 배를 빌러 수상가옥촌으로 들어섰다. 썩은 물 속에서 썩어 가는 듯한 집들, 들 창문으로 내다보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비참해 보였다. 왜 하필 이런 곳에 집을 짓고 사느냐고 동반한「투에」군에게 물었더니 1년에 1백「피아스터」밖에 안 되는 싼 세금을 물고 자유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
뱃놀이 온 시민을 가장하고 수로를 따라 배를 저어나갔다. 땔감 벼 등을 잔뜩 싣고 오는 조그마한 목선들을 볼 수 있을 뿐 괴상한 정적만이 무겁게 내리깔려 있었다. 약 30분간 꼬불꼬불한 수로를 거슬러 올라갔을 때 왼쪽으로 구부러지는 기슭에 찰싹 달라붙은 작은「정크」선 하나가 보였다. 「카메라」를 들이대려하자 차가운 시선이 매섭게 이쪽을 노려본다. 「투에」군이 황급히 손으로 저지하면서 망을 보는「베트콩」들의「정크」선이니 모른 체 하고 지나치라고 귀띔한다. 간담이 서늘해져 앞만 보고 저어 나가는데 약 2백여「미터」지나자 똑같은 배가 또 한 척 보인다.
양쪽 기슭에는 오리 떼를 모는 소년들이 간혹 보였으나 무표정한 얼굴들- 약 50분 후 뱃머리를 돌려 되돌아 나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조금 더 전진하면「베트콩」세력권 내에 들어간다는 것.
먼저 만났던「정크」선에선 검은 옷차림의 청년이 유심히 노려보아 등골이 오싹했으나 그이상의 다른 동작은 없었다.
수상가옥촌으로 되돌아 왔을 때는 1시간30분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를 갔다온 것 같았으나 수로가 뱀 지나간 자국처럼 꾸불꾸불하기 때문이고 직선거리로는 약 5백「미터」밖에 안 된다고 한다. 석양이 비치는「사이공」시가로 돌아오는 기자의 머리 속엔「사이공」강을 사이에 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오갔다.<현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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