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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소수 의견 → 오늘은 다수 의견 … 평균 7년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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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평균 7.3년.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으로 바뀔 때까지 걸린 시간(직전 판례 기준)이다. 이 기간 동안 평균 2명의 재판관의 지지를 받았던 소수 의견이 평균 7명의 재판관이 동의하는 다수 의견으로 바뀌었다. 1988년 헌재 창립 이래 지난해 9월까지 판례 변경이 이뤄진 총 22건을 분석한 결과다.

 헌재는 한국 사회의 가치와 이념이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갈등의 종착점이다. 거기서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가 되는 데 불과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48.0%라는 ‘거대한 소수’를 누르고 출범하게 되는 박근혜 새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비록 현시점에서는 소수 의견일지라도 언제든 다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소수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본지 탐사팀은 헌재와 중앙대 이인호(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 24년간 소수였던 의견이 다수로 뒤바뀐 헌재 판례를 분석했다. 한때 소수였던 주장들은 ▶정치적 권리 확대(5건) ▶사회적 변화 반영(4건) ▶기본권 침해 해소(4건) 등의 이유로 다수가 됐다.

정치적 권리 확대 반영

헌법재판소는 2002년 내린 혼인빙자간음죄 합헌 결정을 7년 만에 뒤집었다. 사진은 2009년 9월 이강국 헌재소장 주재로 열린 공개 변론 모습. [중앙포토]

“해외 거주자들은 투표권 행사에 장해가 되는 사유를 스스로 초래한 만큼 부재자 투표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을 할 수 있다.”

1999년 3월 헌재가 프랑스 유학생 김모씨 등 2명이 제기한 위헌확인 소송에서 합헌 결정을 내리며 제시한 주요 이유다. 재판관 9명이 모두 합헌 판단을 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8년이 지난 2007년 뒤바뀌었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실현 수단인 선거권에 대해서는 입법자가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헌재가 종전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7명의 재판관이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 덕분에 2009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지난 대선에서 15만여 명의 해외 거주 유권자들이 참정권을 행사했다. 헌재 관계자는 “주권자의 정치적 권리를 점차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과도한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 등을 감안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야간옥외집회 금지 조항도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사례다. 이 결정이 내려지기 15년 전인 1994년에는 단 한 명의 재판관만이 위헌을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에 명백히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야간이라고 해서 제한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5명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2명의 재판관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야간활동이 많아지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커지는 시대적 특성도 감안됐다. 연세대 김종철(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간 집회 허용 여부를 행정부가 결정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정신에 부합하지 않고 지나친 규제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사회구조 변화도 소수의 다수화 견인

사회구조의 변화가 소수 의견을 다수로 만들기도 했다. 국가유공자 및 가족의 공무원 시험 가산점 부과에 대한 2006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대표적 예다. 헌재는 2005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 응시자 등 4300여 명이 “가산점 조항이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7대 2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가산점의 대상이 되는 국가유공자와 가족의 수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공무원 시험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일반 응시자의 기회를 지나치게 제약하게 된다”며 판례 변경 이유를 밝혔다. 2001년에는 모든 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냈었다.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개인 사생활 보호 추세에 따라 시대착오적 법률이라 불렸던 혼인빙자간음죄도 2009년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2002년 2명에 불과했던 소수 의견은 6명의 다수가 됐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보호

가해자 중심으로 돼 있던 법 조항들에 대해서도 소수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 왔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대표적 사례다. A씨는 1990년 화물트럭을 몰던 중 버스를 추월하려다 도로를 건너던 B씨를 치었다. B씨는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지만 검찰은 A씨를 불기소 처분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책임을 묻지 않게 돼 있어서다. 이에 B씨는 자신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 받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97년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5명의 재판관이 위헌성을 지적했지만 6명의 위헌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존치됐다. 하지만 12년 뒤인 2009년 같은 조항에 대한 위헌확인 소송에서 헌법재판관 7명이 위헌 쪽 손을 들어줌에 따라 개정됐다. 이인호 교수는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은 경우까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피해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조항이란 해석”이라며 “교통문화 발전 등 사회 변화상도 감안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실화 책임을 묻는 법률에 대한 2007년의 헌법불합치 결정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권익을 더 소중히 하는 기조가 반영된 판단이다. 1961년 제정된 이 법률은 실수로 화재를 냈다면 다른 사람의 피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위헌 논란에 시달렸다. 95년 당시 헌재는 “경미한 실수로 화재가 나 자신도 피해를 봤는데 부근 가옥이 탔다고 그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고 본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2007년 헌재는 “일방적으로 실화자만 보호하고 피해자 보호를 외면했다”고 판시했다.

기본권의 지나친 침해도 해소

야간에 흉기를 휴대했다는 이유로 가중처벌하도록 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항에 대한 위헌 제청은 1995년 4명의 재판관이 제시한 별개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됐다. 4명의 재판관들은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에 반한다는 의심이 있어 이른 시일 안에 법정형을 정상적으로 돌리는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후 2004년 동일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에서 9명의 재판관은 만장일치로 “해당 조항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함에 있어 지켜야 할 헌법적 한계인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인호 교수는 “22건이나 되는 과거 소수 의견이 다수가 됐다는 것은 언제든 소수도 다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소수 의견이더라도 사회 한 축의 의견을 대변하는 중요한 견해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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