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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에 찬 전진 윌슨 수상의 포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3월31일의 총선거에서 보수당을 1백11석이나 「리드」하여 대승의 기쁨을 안은 「윌슨」수상은 17개월만에 정치적인 활개를 펴고 소신껏 일할 수 있게 되었다. 1964년 10월 14년만에 정권을 차지하긴 했으나 불과 3표의 궁색한 승리에 의존해야했던 「윌슨」은 이제야 허리를 펴면서 『인기가 있는 정책이나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시행하겠다』고 말하였다. 「윌슨」은 여덟살 때 벌써 영국의 수상이 되겠다는 박력과 결의를 나타내었던 사람이다. 여덟 살의 꼬마가 아버지의 손목을 이끌고 「다우닝」가 10번지의 수상관저를 찾아가 『이것이 장차 내 집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일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 야망에 찬 「윌슨」이 인기에 구애되지 않고 소신껏 일하겠다고 장담했으니 세계는 앞으로 그의 정치력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윌슨」은 주로 경제시책에 힘을 기울여 국제수지개선, 「인플레」억제, 공업생산증가 등으로 경제안정을 이룩, 이를 바탕으로 영국을 옛날의 명분 있는 나라로 다시 이끌고 가겠다고 나섰다. 「윌슨」이 그의 사회주의 정치이념을 어느 정도로 구사할 것이며 또 그에 따라 앞으로 산업국유화는 얼마만큼 밀고 나갈 것인가 다시 한번 두고볼 일이다.
사회주의자인 「윌슨」이 사회주의의 고전 「자본론」한 권을 읽지 않았다는 데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윌슨」을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인이라고 꼬집은 일도 있다.
「윌슨」은 사회주의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스웨덴」을 으뜸으로 친다고 하는데 그 이유로서 『33년 동안 사회주의시책 아래 있는 「스웨덴」이 보수당정권하의 부국보다 더 큰 경제성장률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그의 정적들은 「스웨덴」에는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도 국영기업체가 적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윌슨」의 산업국유화성향을 분계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강한 종교적 영향을 받고 자라난 「윌슨」수상은 지금도 「퓨리턴」적인 순박성을 지니고 있어 때로는 지나치게 비사교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칵테일·파티」에 나가는 것이 시간낭비라 해서 차라리 집에서 경제통계를 읽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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