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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벌의 살길은 핵심업종 전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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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들이 첨단기술 분야의 침체와 중국의 추격을 극복하고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더욱 강도높은 핵심업종 전문화를 통해 중국에 대해 2-3년의 기술우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진단했다.

이 신문은 지난 40년간 한국재벌은 업종전문화보다는 일반관리기술, 끝없는 야망, 그리고 정부지원 금융 등이 경쟁력의 핵심을 이뤘다고 지적하고 아직도 서구기업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다각화돼 있지만 이제 그같은 과거 전통은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의 선두주자인 삼성, SK, LG 등은 과거보다 다각화의 정도가 낮아졌고 문제가 많았던 대우와 현대는 자체적으로 생존여부가 결정되는 독자기업들로 해체되는 등 재계판도는 4년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고 신문은 말했다.

지난 3년간 재벌개혁에 전력을 기울여온 한국 정부가 이제 다시 이들의 다각화를 허용할지도 모르지만 경쟁적인 금융시장에 노출된 이들은 이제 서구식 모델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신문은 말했다.

그러나 서구의 주식시장 분석가들은 재벌개혁이 절반쯤 완성됐다는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의 말을 인정해주려 하지 않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이 분석가들은 개혁은 중단되고 국영화된 은행들은 아직도 부실기업들을 살려두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고 있으며 하이닉스전자의 처리를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내놓은 출자전환 방안을 채권단이 반대할 경우 하이닉스는 무너지고 그 자산은 세계 반도체시장 참여를 바라고 있는 중국 원매자들의 손에 넘어갈 지도 모른다고 신문은 말했다.

이같은 전망은 중국을 최대의 위협으로 보고 있는 한국의 기업과 정부 정책담당자들에게는 불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신문은 말하고 하이닉스가 무너지고 중국이 그 반도체 생산라인을 매입하게 된다면 한국은 분수령을 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은 첨단기술분야의 침체와 중국의 위협이라는 2가지 도전을 시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신문은 말했다.

재벌 구조조정은 결국 첨단분야의 한국 산업기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켰으나 한국은 자체적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장 강한 분야인 반도체에서도 매우 취약,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가 지난 3.4분기중 87년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수출 및 산업생산 감소추세는 첨단기술분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신문은 말하고 중국의 위협이 가중될수록 이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지도자들은 이에 대한 해법은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등 더욱더 고부가가치분야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국의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며 "케이-팝(K-pop)"이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이라는 점 등은 그런 논리의 근거가 될만한 것들이지만 이는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다고 신문은 평가했다.

신문은 이같은 점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국이 중국에 비해 기술에서 2-3년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경쟁에서 한국기업들은 은행 구조조정의 결과로 은행들이 국영화되면서 정부 의존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과 족벌경영체제 유지를 위해 주식발행보다는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과도한 차입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2가지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또 정부의 개혁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오는 2015년까지 제트전투기를 자체적으로 설계.제작하겠다는 원대한 중상주의적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지난 4년간 많이 변했지만 기업이 핵심업종을 가진다는 것이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닐 때 그 변화는 정착된 것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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