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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산과 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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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환기, 산월(山月), 1960, 캔버스에 유채, 95.5×160.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아침부터 백설(白雪)이 분분(紛紛)…. 종일 그림 그리다. 점화(點畵)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

 1965년 1월 2일, 52세의 수화(樹話) 김환기는 뉴욕의 작업실에서 이렇게 적었다.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 김환기는 만년에 낯선 땅에서 수만 개의 점으로 이뤄진 추상화 양식을 완성한다. 이 메모는 바로 그 새로운 조형 세계로의 도달을 기록한 자신만만한 새해 인사다.

 100년 전인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이중섭·박수근만큼이나 중요한 우리 미술가다. 한국 미술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근대에서 현대로 옮겨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일찌감치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 미술을 접했고, 최초의 근대 미술 유파인 신사실파를 결성했다. 시대를 앞선 모던 보이였지만 옛것을 좋아했고, 서양화가였지만 선비같이 살았다. 홍익대 미대 초대 학장을 지내고,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 부문 명예상(1963)을 수상하는 등 국내 기반이 탄탄했음에도 파리로, 뉴욕으로 떠돌았다. 11년간의 뉴욕 생활을 기록한 일기는 오로지 화폭을 세상으로, 우주로 삼아 고군분투한 노화가의 집념이 느껴져 숨가쁘다. 1970년의 새해에는 이렇게 적으며 고국을 그리워했다.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왼쪽의 그림 ‘산월(山月)’은 그가 1956년부터 3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그린 작품이다. 푸른 밤하늘과 검은 산, 그 산을 가릴 듯 꽉 찬 달로 화면은 조촐하고 청신하다. 산 앞의 네모들은 밤새 헤맬 나그네를 위해 밝혀둔 민가의 불빛인 양 따뜻하다. 파랑은 여름의 색이지만 수화의 청회색은 어쩐지 겨울에 어울린다. 맑은 듯 가라앉은 색이 서설(瑞雪)에 달 비치는 느낌이랄까. 이 꿈꾸는 듯한 파랑은 그가 생전에 애지중지했던 달항아리와도 닮았다. 빛을 품은 듯 내뿜는 달항아리의 푸른 기운 말이다. 그림은 13일까지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 ‘한국 근대미술: 꿈과 시’에 나와 있다.

 눈도 달빛도 어디나 똑같이 내린다. 수화의 그림으로 연하장을 대신한다. 갈라진 마음, 분노, 상처, 박탈감을 감싸 안듯 새해 첫날 눈이 내렸다. 모쪼록 포근하고 풍요로운 2013년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