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에 제일은행장 왜 바뀌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9일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갑자기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샌프란시스코는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그는 당초 20, 21일 제주도에서 세미나와 경영전략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호리에 행장은 21일 귀국해 경영전략 회의를 주재했다. 이어 22일 오후 늦게 주요 부장들에게 새로운 업무보고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23일 오전 제일은행은 호리에 행장이 물러나고 로버트 코헨 비상임이사가 신임 행장으로 내정됐다고 발표했다.

호리에 행장은 이렇게 지난 주말 갑자기 경질됐다. 호리에 행장은 "11월말 물러나는 대로 고향인 하와이로 돌아가 고향을 위한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왜 바뀌었나=호리에 행장은 이날 사퇴가 '내 결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도록 홍보팀에 지시했다.

하지만 은행 안팎에선 자진사퇴가 아닌 '경질'로 보고 있다. 제일은행의 한 간부는 "뉴브리지와의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올들어 하이닉스반도체에 1천억원을 신규 대출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그는 덧붙였다. 다른 간부는 "경영전략 및 성과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호리에 행장은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한 소매금융의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써왔고, 순이익도 냈다.

하지만 제일은행의 위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익이야 적지 않게 냈다지만 앞으로 어떻게 자리잡을지에 대해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호리에 행장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호리에 행장의 역할은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노조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 제일은행의 진로=경력만 놓고 보면 호리에 행장보다 코헨 행장 내정자가 화려하다. 호리에 행장은 소매금융기관에서만 일해왔다.

이에 비해 코헨 내정자는 미국 크레디 리요네은행을 경영하는 등 기업금융과 소매금융을 두로 섭렵했다.

제일은행 이사회의 로버트 바넘 의장은 "코헨의 기업금융과 위기관리 및 상업금융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제일은행을 세계적인 은행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정황을 고려하면 제일은행이 소매금융 일변도 전략에서 벗어나 기업금융 등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호리에 행장을 팽(烹)하고 코헨 내정자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제일은행 노조는 "경질 배경이 명확하지 않다. 매각작업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인 행장이 계속 선임된 것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제일은행을 새로 단장해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작업일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하이닉스반도체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했다.

◇ 호리에 행장 스톡옵션 포기=제일은행의 한 간부는 호리에 행장이 경질된 원인 중 하나가 '스톡옵션 문제'라고 주장했다. 스톡옵션 때문에 호리에 행장과 뉴브리지의 인상이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호리에 행장이 받은 스톡옵션은 3년 임기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현행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자진사퇴할 경우 그 시점까지의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호리에 행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스톡옵션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세정.최현철 기자 sjle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