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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vs 대법원 … 최종 법해석 누가? 또 불거진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해묵은 권한 갈등을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행법상 법의 최종해석 권한은 대법원에, 법의 위헌심판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그러나 두 권한의 경계가 명확지 않은 탓에 두 헌법기관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 왔다.

 선공(先攻)에 나선 것은 헌재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27일 준(準)공무원의 형법상 뇌물죄 적용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한정위헌 청구는 적법하다”고 명시했다. ‘법을 ~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며 법 해석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헌재는 1988년 출범 직후부터 한정위헌 등 ‘변형결정(단순 위헌·합헌이 아닌 조건부 결정)’을 내려왔지만 이를 전제로 한 헌법소원 청구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가 24년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법원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법원 내부에서는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임기 만료(내년 1월 21일)를 앞두고 해묵은 변형결정과 재판소원 논쟁에 불을 붙인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대법원은 96년 이후 헌재가 변형결정을 내리더라도 재심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재판소원’ 논란도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법 해석’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한다는 것은 법원의 판단(재판)도 헌재의 위헌 여부 판단 대상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법은 법원 판단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 ‘재판소원’을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까지 세 번의 법원 판단을 받고도 불복해 헌재에 재판소원을 낼 경우 사실상 4심제가 될 수 있어서다.

 대법원과 헌재는 최근에도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 지난해 6월 헌재는 대법원이 적법한 것으로 판단한 GS칼텍스의 법인세 부과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GS칼텍스는 이 결정을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헌재는 2011년 12월에도 인터넷을 통한 사전선거운동 금지의 근거가 된 선거법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이 적법한 것으로 판단한 사안이었다.

 대법원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한 간부는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위헌적 요소는 이미 상당 부분 해소됐다. 헌재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거리’가 떨어지자 권한중복 문제를 꺼내 헌재 위상을 높이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성낙인 교수는 “헌법재판 선진국 선례를 보더라도 변형결정의 효력을 법원이 인정하는 것이 옳다”며 “헌재법을 개정해 근거를 마련하는 게 좋겠지만, 대법원이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인다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두 헌법기관이 서로의 판단을 존중해 3심제 원칙을 유지하되 엄격한 요건하에서 제한적으로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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