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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의 찬가|변선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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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독교는 너무 오랫동안 하늘만 쳐다보고 발 밑의 대지라는 근거를 잊고있었다. 저 세상에 대한 이 세상에서의 구체적 삶을 경시하였다. 일종의 현실 도피적인 금욕주의가 기독교를 지배하여 온 것이다. 기독교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의 삶의 「장소」를 마련키 위한 공간적 해석을 떠나서 「죽음·죄」라는 시간적 해석에 급급하였었다. 너무 값싸게 은총을 말해왔다. 인간을 무, 죽음, 죄라는 삶의 한계에서 신과 만나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신은 먼 곳에 계시지 않고 우리 가까이에 계신 분, 우리 마음 한복판에 계신 분, 우리와 함께 식사하고 계신 분이다.
문제의 젊은 신학자 「본회퍼」의 말대로 『신은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서 피안적이시다』 기독교는 너무 오랫동안 육과 대지를 죄악시하는 「희랍」철학이라는 김빠진 약을 계속 재탕만 하는 무의미한 작업, 너무 신령한 작업만을 일삼아 온 것이다.
「릴케」가 말하듯 신을 너무 은혜롭고 전능하신 분으로 하늘에 고이 장사 지내 버리는 가증한 작업만 한 것이다. 그러나 신은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세상 밖으로 부르시지 않고 이 세상에서 그의 제자답게 살라고 이 세상 속으로 우리를 보내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그러기에 교회에서만 거룩한 체하는 「교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를 따르고 그렇게 사는 그의「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육없는 「천사」처럼 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만일 기독교가 신이 그처럼 사랑한 이 세상, 대지라는 근거를 상실한다면 그것은 가장 큰 것을 잃은 것이 되겠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힘의 근거는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삼손」처럼 머리털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바로 대해와 대지를 지배하는 희랍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거인 「안티오스」처럼 대지와 접촉되는데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한때 「내 사랑하는 대지의 도덕이여」라고 노래하였지만 기독교야말로 바로 대지를 찬미하는 종교이다.
우리는 「니체」와 같이 「위에로의 초월」(Trans-ascendence)이 아니라 「아래로의 초대」(Trans-descendence)을 통하여 이 거친 대지에서 신을 만나야 한다. 「신」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복음인 것이다. <목사·이화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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