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회의 위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와 여당수뇌는 이번 회기 중으로 월남 증파 동의안 처리와 함께 66년도 제1회 추경예산안을 기어이 처리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한다. 그중 증파안은 이미 국회국방위의 통과를 보아 오늘 본회의에 상정, 심의되는데 이 문제의 처리에 있어서도 문제는 자못 심각한바가 있다. 그리고 추경예산안을 24일까지 기필코 통과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안건의 성질로 보나 그리고 심의의 시간적 여유로 보나 국회의 예산심의권 자체를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삼권 분립제 운영에 있어서 중대한 배경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국방위에서의 증파안의 통과과정을 보건대 안건심의에 필요 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해 초당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원내심의가 국론을 통일시키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 분열을 부채질한 결과를 가져온 것을 우리는 유감으로 생각한다. 원래가 이런 전쟁문제에 관해서는 정당의 당론도 국가의 여론도 통일되기 어려운 것이요, 따라서 초당파 적심의를 거쳐 국가의사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국회가 본회의에서 이 문제를 상정, 심의·표결하는데 있어서, 집권당이나 반대당이 되도록 당적 통제를 삼가고, 영·미 등 선진국 의회 운영의 전통을 본받아 의원들의 양심 표결로써 수적결제를 행해주기를 바란다. 이는 이래야만 이런 중대문제가 당파싸움에 말려들지 않고 가장 공정한 처리를 볼 수 있고, 전선에 투입하고 있는 장병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추경예산안이나 20건의 외국 차관지불 보증동의안을 24일까지 강행 통과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무리한 일이다. 추경예산안에는 국회의 동의를 아직 얻지 못한 국군 증파비, 대일 청구권 자금계획안에 의한 자금배정 등이 들어있어 세입 세출 양면에 걸쳐 불확정적인 요인이 많다. 외국 차관지불 동의 안에 이르러서는 정부 및 여당간에서만 검토되고 있고 아직 국회에 정식제출조차 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중요안건을 앞으로 4, 5일 사이에 일괄 통과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언어수단이라 볼 수 있다. 대체 행정부가 이런 주요안건을 국회 회기 말에 임박해서 국회에 내놓는 것은 심중한 심의를 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박탈하는 것이요, 국회로 하여금 행정부의 결정에만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 존재가치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처사라 규정 짖지 않을 수 없다.
작년 말 정기국회가 66년도 본예산을 심의 통과시키는데 있어서도 국회심의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고 정부원안대로 통과되어 우리 국회가 과연 예산심의권을 갖고 있는가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자아내게 했던 것이다. 그 정기국회는 국회가 기능마비상태에 빠졌다가 민중당의 원내 복귀로 간신히 기능을 회복했기 때문에 예산안의 졸속통과가 불가피 했던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추경예산안의 경우는 그런 조건도 없었는데 정부·여당이 졸속한 심의를 강요하고 있으니 심히 못마땅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모든 것을 자기네들의 책임 하에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안건의 통과를 일방적으로 강행해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책임정치의 원리를 이처럼 변질해서 해석한다고 하면 대체 국회란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정부·여당이 국회를 민주정치의 「액세서리」적 존재로 취급치 말고 삼권분립제의 기본정신에 따라 그 권능을 존중해서 대의정치를 올바르게 운영하는 전통을 세울 것을 강력히 요망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