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유럽에 한국문화 알리기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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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한국문학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마무리지을 텐데…."

지난 12일(독일 현지시간) 백혈병 투병 중 폐렴으로 72세를 일기로 타계한 구기성(丘冀星) 전 독일 본대 교수. 고인은 임종 직전 가족에게 "한국학 발전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며 마지막까지 한국 문화 전파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1931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문학이 독일 등 유럽권에 뿌리내리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서울대 강두식 명예교수는 "고인은 문학적 감각이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했던 선비풍 학자"라고 회고하며 "고인이 아니었다면 유럽의 한국학은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독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고인은 67년 서베를린대에서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헤세.레마르크 등 독일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고, 김소월.김동인.한용운 등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해 유럽에 알렸다.

고인은 서울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던 72년 본대 동양어학부에 한국어학과가 신설될 때 초대 학과장으로 초빙됐다.

이후 한.독 양국의 책들을 번역하고, 독일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고전문학.현대문학.역사 등을 가르쳤다.

또 한국문화연구소를 만들어 한국 문화 관련 서적들을 발행했다. 82년부터 사재를 들여 펴낸 한국문학 전문지 '한'은 한.독 양국이 문화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 퇴계학회 독일지부와 세계 한국 문화예술인 협회 독일지부를 설립했으며 각종 한.독 문화행사 개최에 앞장섰다.

90년대 초 독일을 방문했던 고인의 제자인 숙명여대 김주연 교수는 고인이 독일학자들에게 오전 4시까지 한국 문화를 설명하곤 했다고 전했다.

金교수는 "당시 고인이 '한국 문화에 대한 유럽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지금 고쳐주지 않으면 다시 이같은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기억했다.

부인 김선자(金仙子)씨는 지난 13일 "70년대엔 한국을 자연스럽게 이해시키기 위해 독일 학생들을 학기마다 집으로 초대, 한국 음식을 대접하느라 힘들 때도 있었다"는 말로 고인의 한국사랑을 간접적으로 소개했다. 金씨는 또 "고인은 재독 한국인 2세들에겐 강연 등을 통해 고국 사랑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유일(裕一.재독 의사)씨 등 1남2녀가 있다. 장례식은 오는 20일 독일 현지에서 치러진다. 국내 연락처 031-913-3689.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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