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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야 놀자] '이중간첩'으로 스크린 복귀 고소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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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그 흔한 키스신 하나 없어요. 몸을 맞대는 건 상상할 수도 없죠. 워낙 상황이 그랬어요. 감정 표출이 불가능한 관계였거든요. 사랑이란 달콤한 말은 그들에게 끼어들 수 없죠. 그래서인지 너무 애틋해요. 조심조심 탑을 쌓아갔으나 결정적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사랑, 그런 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말 한마디 못한 채 마음만 아플 뿐이죠."

명랑 여성 고소영(32)의 말 같지 않다. 초롱초롱한 눈, 또박또박한 어투, 그런데 얼굴엔 잠시 그늘이 스친다. 그는 오는 24일 개봉하는 '이중간첩'(감독 김현정) 얘기가 나오자 다소 어두워보였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윤수미의 비극적 운명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혹시 자신의 분신이라고 본 걸까. 그와 윤수미의 닮은점을 캐물었다.

"외롭다는 거죠. 즉, 혼자라는 거죠. 사람들은 제가 톡톡 튄다고 말하지만 그건 드라마 데뷔작 '엄마의 바다'(1993년)에서 맡았던 발랄한 여대생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낯가림도 심해 친구도 별로 없죠. 믿지 않으실 분이 많겠지만요."

고소영이 '이중간첩'으로 2년 만에 충무로로 외출한다. 2001년 그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하루' 이후 처음 스크린에 돌아온다. 그와 호흡을 맞춘 90년대 최고의 흥행 배우 한석규도 '텔미썸딩'(99년) 이후 4년 만에 영화에 복귀해 화제를 모았다.

"정말 부담이 커요. 주연배우 두 명 모두 오랜만의 출연이라 기대치가 높습니다. '그래, 오래 쉬더니, 어떻게 연기할지 지켜보겠다'는 사람이 많아요. 간혹 두려운 생각마저 듭니다. 또 내용이 비교적 무거워 코미디 영화에 익숙한 요즘 극장가에 어떻게 비칠지도 궁금해요."

'이중간첩'의 밑바닥엔 남북 분단의 비애가 깔려 있다. 중심축은 한석규다. 북한 대남사업본부 최우수 요원으로 80년 남한에 위장 귀순한 임병호를 맡았다.

고소영은 남한에 있는 북한의 고정간첩을 아버지로 둔 라디오 DJ로 나온다. 고소영 역시 아버지와 같은 고정간첩. 북한에서 내려온 지령을 임병호에게 전달하는 연락책이다.

'이중간첩'에서 임병호와 윤수미는 위장한 연인으로 나온다. 북한 관련 정보를 흘리며 남한 정보부에서 신뢰를 쌓은 임병호와 미모의 DJ가 남들에게 신분을 숨기고 사랑하는 사이처럼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남북 모두에 버림받는 그들, 이제 선택의 폭은 거의 없으니….

"윤수미는 정말 외로운 사람입니다. 모태신앙처럼 처음부터 간첩으로 태어났어요. 세상에 자기를 드러낼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임병호에게 의지하게 되고, 사면초가에 몰린 임병호도 그녀에게 기대게 됩니다."

고소영은 '이중간첩'은 복합적인 영화라고 했다. 사랑이 나오지만 본격 멜로는 아니고, 총격전이 펼쳐지지만 거대한 액션이 없고, 첩보극으로 부르기엔 지능적이지 않고…. 또 분단을 소재로 했지만 이데올로기 대립보다 한 사회주의자의 몰락에 무게를 실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영화죠.그간 이념 대립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요즘 북한 핵사태를 보며 분단 문제를 새롭게 보고 있습니다."

고소영이 '이중간첩'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비트''연풍연가''러브' 등 기존 출연작에선 주로 동시대 여성을 연기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갔고, 또 제작비 47억원의 큰 영화도 처음이라는 것.

그는 "그래도 제작비 대부분은 석규 오빠가 썼다"며 농담했다. '이중간첩' 이전에 남북 문제를 다룬 작품으론 '쉬리''공동경비구역 JSA'가 있다. 그는 두 작품 모두 빅히트작인 만큼 '이중간첩'도 이들 영화 못지 않게 성공하는 게 올해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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