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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 한국 발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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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료 점유율 102.4%를 기록하며 국립발레단 50년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으로 오른 ‘호두까기 인형’의 우아한 무대. 요즘 부쩍 성장한 한국 발레의 위상을 보여준다. [사진 국립발레단]

102.4%. 지난 25일 막을 내린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 ‘호두까기 인형’의 유료 점유율이다. 100%를 넘겼다는 건 그간 판매하지 않던 시야 장애석(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자리)의 티켓을 팔고, 보조 좌석까지 두었다는 얘기다. 밀려드는 관객 요청에 발레단 사무국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고, 인터넷에선 암표가 거래되기도 했다. 102.4%는 국립발레단 50년 역사상 최고의 판매 기록이다.

 국립발레단뿐만이 아니다. 31일 막을 내리는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의 ‘호두까기 인형’ 역시 27일 현재 9억7000여 만원 가량 팔린 상태다. 현재의 추이로 봐선 10억원을 훌쩍 넘길 태세다. 유니버설 발레단 최근 10년간 기록 중 최고의 판매량이다.

 단지 연말 단골손님인 ‘호두까기 인형’만의 인기가 아니다. 두 발레단 모두 역대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해 기록 중이다. 국립발레단은 90%, 유니버설발레단이 80%에 육박하는 유료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표 참조> “한국 발레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장인주 무용 컬럼니스트)는 평가다.

 #최태지 vs 문훈숙

 올해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는 화려했다. 정통 클래식(백조의 호수, 지젤)을 필두로 네오 클래식(스파르타쿠스), 모던 발레(포이즈), 창작(왕자호동), 국악과의 접목(아름다운 조우) 등 상차림이 풍성했다. 관객의 다양한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했고, 그때마다 객석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까지 눈을 돌렸다. 3월 남아공에서 공연된 ‘백조의 호수’는 개막 2개월 전에 4회 공연이 매진됐다. 발레단 외국 공연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창작 발레 ‘심청’은 유럽 발레의 메카 러시아 모스크바(5월)와 프랑스 파리(9월)를 공략했다. K-발레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이처럼 한국 발레가 국내외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인 바탕엔 최태지 국립발레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의 라이벌 구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해외 발레 관계자들이 한국 발레를 보고 깜짝 놀라는 지점은 ‘주역뿐만 아니라 군무까지 고른 기량을 보인다’는 것이다. 최태지·문훈숙 두 사람이 각 발레단의 단장을 10여 년간 해오면서 발레단의 체질을 강화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발레단장을 한국의 디아길레프(1900년대 초반 ‘발레 뤼스’를 창단하며 러시아 발레를 세계에 알린 흥행사이자 예술가)로 표현하기도 했다.

 #땅으로 내려온 귀족예술

 서희의 아메리칸발레씨어터(ABT) 수석 등극, 김기민의 마린스키 발레단 주역 발탁…. 이제 웬만한 해외 국제콩쿠르 수상 소식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현재 해외 유명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국내 무용수는 24명에 이른다. “한국 무용수가 참석해야 국제 콩쿠르로 공신력을 얻는다”란 말마저 나올 정도다. 질과 양에서 모두 한국 발레의 내실 있는 발전으로 해석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유니버설발레단 임소영 팀장은 “영화 ‘블랙 스완’, 개그콘서트 ‘발레리노’의 인기몰이 등 대중매체를 통해 발레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깨진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한정호 무용 칼럼니스트는 “단지 전공자만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유연성·몸매 교정 등을 위해 발레를 배우는 게 일반화됐고, 그 학습효과가 발레 저변을 두텁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뛰어난 창작 발레가 나오지 못하는 등 안무가가 양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한국 발레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럼에도 내년 발레인들의 숙원사업인 ‘국립발레학교’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한국 발레의 부흥기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보다 체계적인 교육 등 발레 인프라가 단단해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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