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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아니지만 각자 전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한국의 대표적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 50여 명이 지난달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였다. ‘글로벌 전문기업 포럼’ 창립식이었다.
포럼은 중견기업 중 매출·수출·고용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선수’들로 꾸렸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의 멘토가 될 수 있는 리더들이기도 하다. 회장에는 자동차 부품업체 신영의 강호갑(58) 회장이 추대됐다.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대학원(석사) 회계학과를 졸업한 강 회장은 1999년 부도 위기에 있던 회사를 인수해 매출 8000억원대의 기업으로 키웠다. 회사 인수 후 차체와 금형 분야에 집중해 8년 만인 2007년 매출액이 2000억원을 넘어서 중소기업에서 졸업했다.
강 회장이 국내에서 중견기업이 부닥치는 벽을 느끼게 된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매그나와 납품 계약을 맺으면서다. 강 회장은 설비 확충을 위해 300억원 정도를 대출받으려 했다. 그런데 은행에서 난색을 표했다. 위기상황인 만큼 중소기업과 나머지 기업들 간의 대출 비율을 4대 1로 하라는 중소기업 우대 지침이 떨어져서였다. 만일 한 은행이 그에게 300억원을 융자해주면, 그 네 배인 1200억원을 다른 중소기업에 빌려줘야 했다.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다.
강 회장은 “이제 겨우 중소기업을 졸업한 회사가 법적으로는 현대자동차와 똑같은 대기업으로 취급되는 현실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두 달 넘게 정부와 은행에 호소한 끝에 자금은 구할 수 있었지만 강 회장은 이대로는 중견기업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식경제부 등과 논의해 대표적 중견기업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글로벌 전문기업 포럼’이다. 현재 70여 개 회사가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강 회장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문화 한류의 정점을 찍었듯 30여 중견기업을 키워 경제 한류를 일으키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를 위해 중견기업 스스로 노력을 하는 것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도 힘을 보태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중견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화된 정책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말 현재 중견기업은 1420여 개, 매출은 373조원”이라며 “이 중 300여 개를 뽑아 100억원씩 지원하면 3조원이 드는데 그중 10%(30개)가 성공해 매출을 적게는 2~3배, 많게는 몇십 배까지 늘린다면 경제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포럼을 통해 한류 중견기업들이 탄생하면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중소기업 졸업을 미루는 회사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