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증파의 확인길|「험프리」 방한의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은 또다시 미국과 월남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선 없는 월남 전장에 2만여명의 국군을 파견하게 될 것 같다.
지난해 청룡·맹호 부대를 파견할 때 정부는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한다』는 소박한 국제 우의를 앞세워 「무조건」으로 보냈다.
그러나 새해 첫날 「휴버트·험프리」 미 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본격화한 국군 증파는 처음과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우선 정부는 「정글」과 「테러」로 뒤범벅이 된 「메콩」강 유역에 국군을 더 보낼 경우 휴전선의 안전 보장이 염려되고 이 때문에 생길 외교적 실리를 줄일 수 있는 경제적 실리라도 찾아야겠다는 움직임이었다. 「험프리」 부통령이 22일 약 3개월만에 두 번째의 「보따리」를 가지고 오자 국군 증파는 결말이 나고만 있는 듯하다.
그동안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는 증파에 앞선 「선행 조건 문제」를 놓고 외교 흥정을 벌여왔고 그 교섭이 막바지에 이르자 월남 정부는 21일 한국군의 증파를 공식으로 요청해 오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확보하기에 애쓴 「선행 조건」은 「험프리」 부통령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어느 정도 확보되었는가 (?) 국군 증파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궁금하게 했었다.
이제 한국군의 월남행이 결정적이라면 주월 한국군의 규모는 거의 1개군단. 이제 월남 전선은 한국의 제2전선으로 등장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장차 월남전이 난폭화하고 미국의 북폭이 강화될 때는 국군의 병력 보충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한국이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서 확보한 「선행 조건」은 경제면에서는 다소 화려한 (?) 결실을 가져왔으나 군사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것이 외교 전문가들의 주역이다.
또한 선행 조건은 나열된 항목은 푸짐하나 그 항목들이 장차 열매를 맺기에는 너무나 미국 측 성의에 기댄 점이 많다는 것이다. 선행 조건의 핵심은 역시 『휴전선 이남의 한국민이 베개를 높이 베고 잠을 이룰 수 있는』 한반도의 안전 보장 문제이다. 「험프리」부통령은 선별 기자 회견에서 『휴전선 이남에 대한 공산군의 침략은 미국 본토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험」 부통령은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의 개정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로 「노」였다.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제3조에는 『한국이 북괴로부터 침략을 받을 땐 「미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반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이 조항이 불안하다는 주장이다. 이 조항을 「즉각 반격」으로 고치자고 여러 차례 제의해왔으나 이 문제는 6·25동란의 경험과 또 휴전이라는 현재의 상황이 엄연히 전쟁 상태라는 것을 고려할 때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다.
파월 장병의 처우 개선은 명분에 그쳤을 뿐 크게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것은 아니다. 전사자에 대한 보상금은 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국군 장비의 현대화는 한국 측이 당초 「기한부」로 최단 시일 내에 해줄 것을 미 측에 요청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막연히 「앞당겨 실시한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진 것 같으며 3개 예비 사단의 전투 사단화도 이와 비슷하게 낙착된 것 같다.
경제면에서 볼 때 군원 이관의 중지는 중지 기간을 한국군이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만 보장을 받았는데 미국의 대외 정책상 이 이상의 요구는 관철될 수 없었을 것이다.
1억5천만「달러」의 AID개발 차관을 연내에 전액 다 사용키로 합의한 것은 성과의 하나라고 평할 수 있으나 앞으로 한국이 제시하는 사용계 획을 미측이 어느 정도 성의 있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좌우될 것 같다.
1천5백만「달러」의 신규 원자재용 차관은 어떠한 조건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대되는바 크다.
한국이 경제 조항 중 가장 역점을 두었던 월남에서의 BA정책 완화는 착실한 합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2백종의 군수 물자와 용역을 한국에서 구매하게 된 것은 정부의 끈덕진 노력의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이 대미 일변도 외교를 지양하고 다방적인 외교 노선을 추진해나가기에는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월남전에 대한 세계의 여론이 악화되면 될수록 한국 외교는 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제21차 「유엔」 총회, 제2차 아·아 회의 그 밖의 각종 국제 회의는 나이 어린 한국 외교를 괴롭힐 것으로 보이며 문제는 이 같은 외교적 손실을 경제적인 실리로 어떻게 만회하고 조정하느냐에 따라 한국 외교의 장래는 결정될 것 같다. <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