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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거래소의 설치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농림부는 조곡의 원활한 수급과 공정한 거래, 그리고 곡가의 안정을 그 설치 목적으로 하는 양곡거래소 법안을 성안하여 경제 각의에 부의 했다고 알려졌다. 이 법안에 따르면 우선 서울에 1개소의 양곡거래소를 설치할 계획이며 그에 소요될 자금은 약 60억원으로 보고 있다.
종래 곡가에 관련된 양곡 수급 정책의 주축은 소위 정부 관리 양곡의 조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소요되는 자금의 마련이 통화 정책상의 규제 때문에 제대로 된 일은 거의 없었으며, 또는 물가 안정이라는 정책적 요청으로 말미암아 정부 매상 가격이나 시판 가격의 적정선을 언제나 과저하게 책정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금년도 하 추곡 매상량의 증가 문제만 해도 재원 문제로 암초에 부딪치고 있으며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안정 기금이나 야당의 주장인 이중 가격 제도 똑 같은 이유 때문에 그 실현이 난망시 되고 있다.
이와같은 사정에서 양곡거래소의 설치는 응당 생각해 볼 만한 타개책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양곡의 원활한 수급 조정이 서울 한군데의 거래소 운영으로 이룩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양곡은 그것이 원시 산물이고 계절 산품이라는 특성에서만이 아니라 영농 규모의 영세성 때문에 가격 변동에 대한 공급의 탄력성이 지극히 낮은 것은 물론, 중문 상인의 개재로 인해서 양곡의 유통 경로는 일반 상품의 수급과 그것을 동일시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사정은 거래소가 설치된다고 하여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 15인 이상의 회원으로 된 비영리 법인으로 조직한다고 하지만 곡물 거상들의 농간의 여지는 거래소 관리 방식 여하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욱 조직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재작년의 이례적인 곡가 파동도 결국은 기개곡물상의 투기와 시세 조작에 있었음을 회고한다면 거래소에 있어서의 투기가 해방전의 미두 못지 않게 성행될 우려마저 있다 할 것이다.
둘째로는 운영위원회와 농림부장관의 관리와 감독이 그 적정을 얻어 공정한 거래를 보강 할 수 있을 경우라 할지라도 또 하나의 근본 문제가 남는다. 즉 곡가는 덮어놓고 「안정」 만 된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곡가 안정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이다. 가령 거래소에 있어서의 시세조작으로 곡가의 계절적인 진폭이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거래소에서 형성된 가격 수준이 농민의 생산자 가격을 하회하는 것이라면 거래소 설치의 기본 취지에 빗나간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양곡거래소의 설치는 어디까지나 광범한 곡가 정책의 일환으로 생각되어야 하며 그것으로 만사료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예컨대 농협의 공판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만 있다면 생산자 가격으로서의 곡가의 안정적 유지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이며,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 전환에 따라서는 이중가격제 등의 운영으로 곡물의 생산자 가격과 소비자 가격을 그때 그때의 경제적 여건에 맞춰서 조정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례적인 곡가 정책의 틀을 깨고 보다 종합적인 구상이 열매를 맺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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