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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매장에 왜 IT 요원 배치했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블룸버그가 얼마 전 발표한 세계 100대 부자 중에서 올해 보유자산 가치가 가장 많이 오른 사람은 스페인 패션유통업체인 자라(ZARA)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이었다. 올 한 해에만 개인 재산이 무려 173억 달러나 늘어 총 526억 달러(약 55조원)에 달했다.

스페인의 소도시 갈리시아에서 1975년 첫 점포를 연 자라는 90년 미국과 프랑스에 진출하기 전까지 스페인의 자그마한 유통회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외진출 20여 년 만에 88개국에 1700여 매장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자라의 성공담은 유통업의 변화 속도와 가치창출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실패담 역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자라가 급성장하는 동안 파산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된 세계적 유통업체도 수두룩하다.

한때 미국 내에서 월마트와 어깨를 견준 대형마트 체인 K마트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시어즈백화점, 미국 최대 수퍼마켓 체인 A&P 등 일세를 풍미한 강자들이 비운의 주인공이다. 20년간 유통업은 다른 업종보다 훨씬 굴곡진 부침을 겪었다. 낡은 방식에 매달린 곳은 소비자로부터 여지없이 외면당했다.

모바일 쇼핑 앱 서비스 미진, 성장성 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과 세계화의 진전,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른 욕구 우선순위 변동 등은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패턴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소비자의 변화는 곧바로 유통업의 변신을 초래한다. 딜로이트는 ‘스토어 3.0 시대’라는 이름 아래 유통업의 미래상과 소비자의 쇼핑 행태를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는 이동성이다. 오늘날 소비자는 늘 바쁘게 움직인다. 출퇴근에 하루 평균 100분가량 걸리고 한 자리보다 옮겨다니며 처리해야 할 업무가 늘고 있다. 전업주부조차 집 안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동 소요 시간이 늘면서 이동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커졌다.

지하철 선반 위에 신문 등 인쇄 매체가 수북이 쌓이는 대신 스마트폰 등 각종 모바일 기기로 뉴스를 검색하거나 게임·쇼핑 등을 즐기는 풍경이 일상화됐다. 이동 중에 휴대전화로 영화표를 예매하거나 의류·생필품 등을 구매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모바일 쇼핑은 올해 미국에서만 210억 달러 규모로 전체 전자상거래의 10%에 육박한다. 이제 ‘움직이는 소비자’가 화두다. 실제 매장과 온라인 매장, 기차역이나 편의점 등 이동 중 거치는 여러 접점을 조합해 최적의 고객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은 유통업의 주요 과제다.

아직 어떤 유통업체도 결정판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이를 재빨리 구현하는 업체는 경쟁우위에 설 것이다. 핵심 고객층의 이동경로를 파악한 뒤 적절한 시점에 쇼핑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와 프로모션을 팝업 메시지로 노출시키는 것이 한 가지 방안이다.

또한 폭넓게 구색을 갖추기보다 모바일 환경에 맞도록 정제된 상품 정보와 맞춤형 추천을 제공하는 것이 미래형 유통의 나아갈 길일 것이다. 상품 검색과 구매 결정, 결제, 상품 수령이 각기 다른 접점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해 고객의 이동 편의와 즉시 구매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는 정보기술(IT) 기반의 쇼핑환경 구축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손안의 컴퓨터로 상품을 찾아보고 사용 후기를 확인한다. 서울 명동처럼 목 좋은 곳에 넓은 진열공간을 마련한 많은 유통업체가 사이버 공간의 경쟁자를 대신해 무료 쇼룸과 체험 공간을 제공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유통업체에 불리해 보이는 이런 상황도 활용하기에 따라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의 장점을 결합해 가격·구색·체험·편의 등 다양한 고객 욕구를 입체적으로 충족시키는 전략이 그 대안이다.

유럽에는 이미 상품 매대 대신에 대형 터치스크린을 설치해 원하는 상품을 상세정보와 함께 찾을 수 있도록 한 미래형 스토어가 선보였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큰 돈 드는 매장의 규모를 줄이고, 고객은 다양한 상품을 풍부한 정보와 함께 접할 수 있다. 3D 입체 사진이 실물 제품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가치 있는 시도다.

충동구매조차 SNS에 의존해

IT를 매장 환경에 접목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와이파이(Wi-Fi, 무선 랜) 환경 구축과 모바일 쿠폰, 모바일 상품권 등이다.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판촉에 적극 활용하는 매장에서 소비자들의 방문과 체류 시간, 구매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IT 전략을 스토어 전략의 핵심으로 간주해 이에 많이 투자하는 기업은 놀랄 만큼 적다. 글로벌 500대 유통업체 중 12%만이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웹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관련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는 7%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차별화 효과가 큰 분야인 셈이다.

셋째 트렌드는 ‘소셜 쇼핑’의 증가다. 요즘 소비자들은 구매 과정에서 친구나 지인의 조언을 듣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해당 제품에 대한 전문 지식과 사용 경험을 지닌 블로거 등의 의견을 종합해 쇼핑에 활용하곤 한다. 사전에 인터넷 정보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충동구매조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사려는 상품 사진을 올리고 수십 초 내에 여러 의견을 받아 구매 결정에 참고하곤 한다. 오프라인 매장 직원의 권유나 설명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유통업체가 해 온 점원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함을 뜻한다. 과거에는 매장직원에 대한 판매기법과 제품정보 교육이 영업성과를 좌우했다면 이제는 매장에서 고객의 입체적 쇼핑 경험을 원활하게 지원하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스포츠용품 브랜드 아디다스가 요즘 신규 매장의 점원을 IT 전문가로 교체한 것이 한 예다. 직접 상품정보를 전달하기보다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고객의 쇼핑 행태가 바뀌고 모바일 상거래 규모가 커져도 소매 매장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여전히 물품 구매의 가장 중요한 장소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경로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스토어는 더 이상 익숙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 공간과 쇼핑 프로세스, 공급 시스템 면에서 새로운 형태를 드러낼 것이다.

‘스토어 3.0’은 이런 진화를 통해 소비자의 마음과 발길을 붙잡고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을 모색하려는 노력이다. 유통업체 입장에서 차세대 스토어 전략과 고객 쇼핑 경험 극대화 전략을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신기술을 한발 앞서 접목해 매장 운영과 관련 인프라를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송기홍 딜로이트 컨설팅 S&O 대표

송기홍 전략?운영(S&O) 책임자. 연세대와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을 나와 모니터그룹 아태지역 대표를 지냈다. 소비재·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마케팅 및 채널 전략 전문가다. 저서로 『프라이싱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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