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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정부 조직 개편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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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지난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가운데 정부 조직 개편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 박 당선인의 정책 기조를 국정에 반영할 조직 개편이 단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곧 출범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주요 과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을 바꿔서야 되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찬반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국정 개혁 위해 수술 나서야 한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명박 정부는 ‘큰 시장 작은 정부 논리’에 기반한 ‘대부주의(大部主義)’에 근거해 대규모 부처 통폐합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부주의의 전제가 흔들리면서 적지 않은 부작용을 유발했다. 일부 통합부처에서 업무공백과 사각지대가 나타났다. 정책추진의 효율성·효과성이 저해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수입쇠고기 촛불시위, 글로벌 금융위기, 스마트 정보통신 혁명, 복지의식의 제고, 높아진 국가 위상 등에 따른 새로운 국민적 요구에 전문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장관에게 대통령의 권한 위임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넓어진 통솔범위를 감당할 수 있는 경험·지식이 풍부한 장관후보군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은 대통령의 국정기조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새 정부가 이전 정부와 차별적인 국정기조를 제시·실현하기 위해선 새 국정기조에 부합하는 정부조직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적으로는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대선 공약이나 정치적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다. 행정적으론 관료제 개혁, 조직의 신축성 확보, 문제해결 능력 향상 등을 가져올 수 있다. 나아가 기능 중복, 관할권 틈새, 기능 편중, 관할권 갈등 등 현재와 미래의 정책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문제가 상존할 경우에도 조직개편이 이뤄진다.

 박근혜 당선인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를 강력히 공약했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에 기반한 창조경제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박 당선인은 국정기조에 부응하는 정부조직 체계를 조기에 제시해 공직자들이 마음을 다잡아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당선인이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첫 번째 실천이며 신뢰를 쌓는 행위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여야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과학기술, 정보미디어, 해양수산 등 정부조직 신설 공약은 정치적 합의가 어렵지 않은 까닭에 정부 출범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낙선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선거 과정에서 복지 강화 등과 함께 벤처중소기업과 창의적 인재를 바탕으로 하는 혁신경제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바 있다. 국정기조에 부합하지 않는 조직체계로 인해 효율적인 정책 추진이 어려운 분야의 경우에는 문제진단과 의견수렴을 거쳐 조직개편에 나설 수 있다. 금융 정책·감독 기능의 통합, 중소기업 지원 부처 신설의 경우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장기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할 국가전략적 과제에 소홀하기 쉬운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획예산부, 국가전략연구센터 신설을 통해 국가전략 개발과 정책조율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모한 우리나라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길 원하고, 국내체류 외국인과 국외체류 국민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개방통상국가형 서비스 조직으로서 국제개발협력청과 출입국이민청 신설도 요구된다.

 정부조직 개편작업은 이른바 ‘힘 있을 때’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집권 후반기에 시작된 개혁이 성공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새로운 국정 설계와 정부 개혁은 많은 저항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국민의 변화 의지와 새 정부에 대한 지지가 최고조인 집권 초기에 기본설계를 마련해 단행해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은 공공부문 전반에 걸친 개혁의 출발점이다.

김 동 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잦은 개편은 국정 혼란만 초래한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행 정부조직법은 1948년 7월 17일 법률 제1호로 제정·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무려 69차례의 개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개정은 권한과 소관 업무를 조정하거나 다른 법률의 개정에 따라 이루어진 소소한 것들이었으나 정부조직의 틀을 완전히 바꾼 전면 개정도 수차례 있어왔다.

 대한민국 출범 당시에는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재무부, 법무부, 문교부 등과 같은 정통적·학술적 행정 분류 방식에 따른 정부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지식경제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 등과 같은 융합형 정부조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과거 상공부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력자원부, 상공자원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로 각각 명칭과 조직이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체육청소년부, 정보통신부 등은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고, 교육부는 과학부·노동부와 기능이 합쳐졌다 떨어지기를 반복해 지금은 전문가들조차도 연구개발(R&D) 업무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사무인지, 과학기술위원회의 사무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잦은 개편의 대상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행정법 전공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부처의 이름을 옳게 쓰고 있는 것인지 일일이 인터넷으로 검색해 확인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형편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차기 정부의 조직개편 논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집권세력의 이념에 따라 큰 정부를 지향할 수도 있고 작은 정부를 추구할 수도 있기에 어찌 보면 정권 교체에 따른 정부조직 개편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정부 부처가 통째로 없어지거나 전에 없던 새로운 부처가 신설되는 정부조직 개편은 단순한 정부조직의 개편이 아니라 거의 혁명에 가깝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레임덕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빨리 오는 것도 잦은 정부조직 개편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올해 하반기부터 거의 모든 부처들은 정책개발, 법령개정, 계획수립 등의 업무를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조직이 어떻게 개편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러한 일들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뀌면 새롭게 개편된 조직을 정비하고 적응하는 데 1년 넘게 허비하다가 겨우 적응하려고 하면 대통령 선거가 다시 돌아와 또 1년 가까이 개점휴업을 한 상태에서 차기 정권을 바라보는 국정의 행태가 반복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정책 수립과 집행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 당선자나 일부 참모의 머릿속 생각에 따라 실험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식의 정부조직 개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없는 한 이러한 불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차제에 헌법을 개정할 때 정부조직을 헌법 규정화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헌법에 대통령에 관한 규정이 있으므로 대통령 보좌기관으로서의 정부조직을 헌법화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헌법의 경직성으로 인해 정부조직이 상황 변화에 발 빠르게 즉응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이는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의 기능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잦은 정부조직 개편은 국정을 혼란스럽게 하고 안정적인 국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 민 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