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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나는 붕어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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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응석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생각을 뒤집어라, 세상을 뒤집어라.” 그러나 정작 뒤집힌 건 매번 나의 삶이었다. 몸 하나 겨우 누일 작은 단칸방. 우리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세상과 만나던 날, 날 처음 반겨준 것은 펑펑 내리는 함박눈과 매서운 겨울바람뿐이었다. 군불 하나 없는 차가운 가판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붕어빵들이 서로의 온기로 세상의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 그 순진무구한 동그란 눈엔 편의점 아파트에 누워 있는 호빵들이 어른거린다는 것을.

 그곳은 따뜻하고 좋은 집, 피자호빵·카레호빵 등 외국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들이 팔려나가는 취업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이내 가판에 누운 내 처지는 몹시 초라해졌다. 젊은 붕어빵들의 좌절에 얼마 전부터 호떡들은 몸이나 녹이라며 말없이 녹차를 건네주고 있다.

 오늘은 해가 저물도록 찾는 사람이 없다. 붕어빵에게도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예전엔 1000원에 5마리 이상씩 취업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3마리도 어렵다. 고객이 원하는 스‘팥’(일명 스펙이라 한다)을 채우기 위해 가난한 붕어빵들은 졸업을 미루고 얼굴이 더 노래지도록 알바를 해야 한다. 그마저도 높은 물가 탓에 지금 우리 세대는 밀가루, 팥, LPG는 꿈도 꾸기 어렵다는 3포 세대에 접어든 지 오래다. 점점 우리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매번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꿈만 꾸느냐고 비난한다. 공무원 되겠다, 대기업 간다 하는 획일화된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맞다. 우리는 붕어빵이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일까. 무쇠의 틀에서 그 뜨겁고 지난한 과정을 이겨내며 부드러우면서 바삭한 빵이 되겠다는 꿈은 모두가 소중하다. 방학에도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붕어빵 친구들의 모습은 같아 보여도 다 다르다.

 또 우리 안에는 시린 추위를 이겨낼 김 모락모락 나는 열정도 있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나. 자신의 뼈와 살을 태워 따뜻함을 만들어낸 붕어빵들이 있기에 겨울이 녹아 봄이 오는 것이다.

 지금 길거리엔 개천에서 나던 용들은 사라지고 결국 노점에서 태어난 붕어빵들만 남아 있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앞을 보고 달린다. 비록 우리들의 존재는 작고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겐 고래빵만 한 꿈이 있다.

 종이 봉투에 하나 담겨질 때마다 누군가의 가난한 허기를 채워주고, 퇴근길 아버지의 가장 값비싼 사랑으로 배웅 나온 딸아이의 꽁꽁 언 손을 잡아주어야지. 내 앞에 강요된 무쇠의 틀을 깨고 세상을 뒤집는 붕어빵이 돼야지. 그렇게 어느 귀퉁이 붕어빵이 익는 노점은 젊은 붕어빵들의 수다와 갖가지 생각으로 지금도 가장 뜨겁게 겨울을 녹이고 있다.

김 응 석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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