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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도둑 기념비|짓꿎은 속칭 가진 소군 전승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번잡한 「빈」시에서 「슈베하트」국제공항에 이르는 길목엔 「슈발츠·베르그·푸라츠」란 이름의 아담한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외양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잇는 공원과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공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흑색의 군인상, 이를 둘러싼 투박한 석책, 게다가 동상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경관의 눈초리가 공원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한다.
시민의 벗이어야 하고 시민의 안식처가 되어야 할 공원이 시민의 질시를 받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욕된 역사를 대변하는 흑색의 군인상-.
「빈」시민들에 의해 속칭 「시계도둑」기념비라 불리는 이 소련군 전승비는 2차 대전 이후 10년에 걸친 4개국(미·영·불·소)분할통치에 종장을 고하고 나서 「빈」주재 제1호의 붉은 자취를 남겨 보려는 소련의 짓궂은 생트집에 의한 욕된 동상이다.
1438년이래 수백년 동안 전 독일 민족 위에 군림해온「합스부르크」가의 자존심이 몸에 배어있는 이들 국민에게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빈」시가 한복판에 찍혀진 이 오점이 견딜 수 없는 치욕일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 글로 비통한 여론이 이 기념비의 철거를 계속 주장해 왔으나 간신히 되찾은 국제적 보장을 깨뜨릴까 저어하는 정부측 태도로 동상의 보호는 강화되기만 했다. 이래서 이번엔 행동으로 동상철거가 기도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일어났던 몇몇 대수롭지 않은 폭약사건엔 경찰 측도 조금 무관심했었지만 직접간접에 의한 이 욕된 동상의 폭파기도가 점점 규모가 커지자 경찰 측 경비도 날이 갈수록 삼엄해지기만 했다.
그 대표적 사건이 62년8월의 「도나리트」폭약사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폭파직전에 발각되긴 했으나 위험은 상존, 놀란 경찰당국은 주위의 아담한 나무숲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감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늘도 회색의 우수를 머금고 공원주위를 산책하는 노경의 연금부부의 저주에 찬 눈초리가 이 동상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있다.【안병영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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