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이 있는 풍경] 불혹 넘긴 극단 실험극장

중앙일보

입력

'나이 40이 되던 날 눈물이 핑돌더라'던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 말에서는 질풍노도와 같던 젊음의 열정 같은 것은 이제 삭히고, 혹되지 않은(不惑)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다짐이 묻어나 보였습니다.

글쎄, 계절탓일까요. 왠지 나이 40과 가을은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 의 근친(近親) 의 냄새가 짙습니다. 그래서 제법 감상적인 얘기로 말문을 열어봤습니다.

어디 사람뿐이겠습니다. 비유기체인 어떤 단체라도 '연륜 40'이 되면 지난 일을 되돌아 보며 오늘과 내일의 '나'를 전망해 볼 때가 됐다는 신호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견강부회해 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극단 실험극장입니다. 1960년 태어났으니 이 유력한 극단의 나이는 만 41세입니다. 지난해 불혹을 자축했어야 했으나 그럴 여력도 없을 만큼 쇠락해져 그만 해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새 대표(이한승) 체제로 극단을 정비해 지난 4일 '실험극장 40년사' 발간.기념공연 개막(우현종 작.김성노 연출 '브레히트 죽이기', 11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 을 통해 드디어 역사의 한 매듭을 지었습니다.

중장년의 연극팬들은 잘 알 것입니다. 실험극장은 60~80년대 소위 정통연극.소극장 연극의 산실이었습니다.

극단의 둥지로 지금의 운현궁 옆에 있던 운니동 소극장은 70~80년대 장안 제일의 명소였습니다.

'에쿠우스''아일랜드''신의 아그네스' 등 히트작 퍼레이드는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입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윤호진을 있게 한 곳도 바로 이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설은 정부의 운현궁 복원계획에 따라 극단이 93년 압구정동으로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96년 작고한 최장수 대표였던 김동훈씨는 강남에 연극의 꽃을 피워보려고 갖은 노력을 해보았으나 관객들이 움직여주질 않았습니다. 결국 압구정동 극장은 95년 간판을 내려 실험극장은 무극장의 극단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면 때도 많이 끼게 마련입니다.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딛고 이번 '40년' 자축행사를 계기로 실험극장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젊은 극단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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