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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포장 업그레이드, 소비자 마음을 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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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 기자 40명이 불경기에 히트한 제품 42개를 취재했다. 입주자가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아파트, 날씨에 따른 피해를 보전해주는 보험, 가시를 발라내고 파는 생선 같은 것이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무조건 싸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 그보다는 제품 기획·생산의 관행을 깨고, 소비자가 필요로 했거나 불편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알아주는 아이디어가 성공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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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국내에도 소개된 책 『10년 불황 그러나 히트는 있다』에서 다섯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싸면 그만이라는 식은 안 된다’, ‘기술개발이 진리다’ ‘패자 상품도 화려하게 부활한다’ ‘안일한 사고가 위험하다’ ‘성실·신용으로 다가가라’다. 일본 패스트패션회사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불경기에 사람들은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한 상품은 폭발적으로 팔린다”고 했던 것과도 통한다.

이처럼 소비재는 기능성 강화가 성공의 핵심이다. 일본의 월간지 ‘닛케이트렌디’가 꼽은 일본의 히트상품도 마찬기지다. 씹는 맛을 쫄깃하게 만든 라면, 지방흡수를 억제하는 콜라, 부드러운 맛을 살린 맥주 같은 ‘업그레이드’ 상품이 불경기를 이겼다.

국내에서도 불경기에 변화하는 소비 패턴을 읽어낸 상품들은 인기가 식지 않았다. 꽁꽁 언 경기 속에서도 소비자들은 ‘확실한 업그레이드, 확실한 가치를 주는 제품’에 지갑을 열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의 히트상품 10개를 선정하면서 함께 한다는 느낌의 ‘동고동락’, 불안과 긴장을 해소해주는 ‘탈출’과 고성능·탁월함을 앞세운 ‘업그레이드’를 키워드로 꼽았다. 각각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수험생·청소년에게 인기를 끈 에너지음료, 기존 커피믹스와 차별화한 고급형 인스턴트 커피를 예로 들었다. 식음료 분야에서도 아이디어를 통한 업그레이드가 불황을 이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동서식품이 내놓은 스틱형 원두커피 ‘카누 미니’(아메리카노 한 봉지 0.9g)가 대표적이다. 미니가 아닌 일반 사이즈 ‘카누’(1.6g)는 지난해 출시됐다. 고급커피의 맛과 스틱의 간편함을 동시에 노린 제품이었다. 동서식품은 많은 소비자가 카누 한 봉지를 두 번 이상으로 나눠서 마시는 패턴을 발견하고 기존 제품의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만 줄여 ‘미니’를 내놔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배스킨라빈스 또한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 히트를 쳤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조각으로 미리 나눠놓은 ‘와츄원’과 ‘러블리큐브’ ‘해피큐브’다. ‘와츄원’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각기 다른 맛을 볼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지난해 11월부터 1년 동안 150만개가 판매됐다. 배스킨라빈스는 동그란 모양의 ‘와츄원’을 업그레이드해 네모난 ‘큐브’ 시리즈를 새로 내놨다.

서울우유의 ‘목장의 신선함이 살아있는 요구르트 4종’은 요구르트를 떠먹을 때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함에 주목했다. 뚜껑에 요구르트가 묻지 않도록 디자인을 바꾼 것이다. 안쪽에 특수코팅을 해놓아 뚜껑을 열기 전에 톡톡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 컵도 투명하게 바꿨다.

형태뿐 아니라 품질을 업그레이드한 제품도 인기를 끌었다. 즉석밥을 잡곡으로 만든 동원F&B의 ‘쎈쿡 건강한 혼합곡밥’, 원재료 이외의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는 동부팜가야의 과일주스 같은 제품들이 소비자의 마음을 얻었다. 저렴한 캔커피지만 아라비카 고급 원두를 사용한 롯데칠성의 ‘칸타타’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칸타타는 콜롬비아·브라질과 같은 유명 산지에서 원두를 골라 로스팅 후 3일 내에 만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기 침체에도 건강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은 제품도 통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현대적으로 개발한 한방약초 ‘목화토금수’가 좋은 예다. 한방차·음료 같은 것을 먹기 좋게 만든 것이 주효했다. 또 콩의 영양성분을 강조한 정식품의 ‘베지밀’ 역시 두유의 대명사답게 불경기에도 인기를 이어갔다. 올해 우리콩, 검은 두유, 바나나 두유 식으로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잇따라 내놨다. 한국야쿠르트는 유산균 1000억 마리와 허브 ‘엘더플라워’ 추출물이 들어있는 발효유 ‘세븐(7even)’을 출시해 웰빙 트렌드를 잡았다.

불경기 트렌드를 읽어 성공한 제품도 있다. 농심의 ‘신라면블랙컵’이다. 농심은 불경기에 편의점은 성장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해 출시해 화제가 됐던 ‘신라면 블랙’의 컵라면을 내놓은 배경이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이 주로 팔린다는 점을 활용한 것. 실제로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에 따르면 편의점은 3년 연속 백화점·대형마트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19.8% 늘어났다. 농심 측은 불경기에는 라면으로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보고 기존 컵라면보다 품질을 높이고 양도 늘렸다. 예상은 잘 맞았다. 출시 6개월 만인 지난달 컵라면 전체 중 3위에 올랐다. 농심 측은 “불경기가 신라면블랙컵의 인기가 높아지는 데에 오히려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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