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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성 대통령 박근혜 … 화려한 기록, 무거운 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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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여성 대통령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화려한 기록이다. 그동안 여성 대통령은 주로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 같은 남미 국가에서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유럽에서는 대처(영국)와 메르켈(독일) 같은 총리가 있지만 대통령 당선은 총리보다 힘들다. 동북아시아는 남성우월주의가 남아 있는 유교문화권이다. 이 지역에서 여성 대통령이 등장한 건 더욱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박근혜는 지역의 정치·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근혜는 부녀 대통령이란 기록도 달성했다. 인도의 간디나 파키스탄의 부토는 부녀 총리였다. 아르헨티나에는 부부 대통령, 미국에는 부자 대통령이 있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당선은 인간 드라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총탄에 잃은 후 1979년 청와대 밖 광야로 나왔다. 18년 은둔을 깨고 1997년 정계에 들어갔으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6년엔 매우 위험한 테러를 당했고 2007년엔 후보 경선에서 석패했다. 입문 15년 만에, 아버지 피살 33년 만에 온갖 역경을 딛고 그는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당선으로 한국 정치는 여성이라는 마지막 벽을 넘었다. 과거 김영삼은 문민교체, 김대중은 여야·지역 간 권력교체를 달성했다. 노무현은 3김 시대를 끝내고 세대교체를 이뤘다. 박근혜는 성별(性別)이라는 최후의 교체를 해냈다.

 하지만 기록이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록은 과거일 뿐 미래에는 또 다른 성과를 내야 한다. 박 당선인은 나라 안팎에서 새로운 환경과 도전을 맞고 있다. 변화는 거친데 준비는 미약하다. 이 파도 속에서 선장 박근혜는 시험에 들고 있다.

 분단 67년 만에 북한은 가장 위태로운 상황이다. 김정은 3대 세습정권은 1년에 두 차례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서방을 위협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이라는 쌍절곤을 휘두르며 벼랑 끝 전술을 강화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급변사태라도 터지면 이는 남한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위기가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은 이념으로 쪼개진 공동체를 이끌고 공존과 통일을 향한 길을 개척해야 한다.

 박근혜 등장에 맞춰 한반도 주변엔 새 리더십이 구축됐다. 미국 오바마는 재선에 들어갔고 중국은 5세대 시진핑 체제가 출범했다. 일본 아베 극우정권은 패권의 과거로 돌아가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박 당선인은 한·미·일 동맹을 재정비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북한을 관리하고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외교적 과제는 40년 전 아버지 시대보다 더 무거울 수 있다.

 도전이 거세도 응전이 단단하면 두려울 게 없다. 하지만 남한은 그렇지 않다. 대선 결과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보여주었다. 양쪽 자석으로 몰리는 쇳가루처럼 한국 사회는 보수·진보 양극화를 드러냈다. 특히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 이번에도 ‘동-새누리당, 서-민주당’ 구도가 재연됐다. 영호남 간의 깊은 단층선도 여전했다. 세대 간 갈등 양상은 2002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국민 대통합을 주창했다. 하지만 현실은 난망이다. 양대 세력은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부터 다시 맞붙을 것이다. 여차하면 이명박 정권 초기 촛불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

 박근혜는 시민세력과 야당 추천인사도 참여하는 국정쇄신 정책회의를 공약했다. 여야 지도자 회의도 제안했다. 반대세력의 동참을 유도하려면 새 정권은 과거와 다르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처럼 요직을 전리품으로 생각하면 이런 참여는 요원할 것이다. 새 정권은 과감한 탕평을 통해 반대·소외세력과 융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념·지역·계층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탕평을 실험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에게 닥칠 가장 실존적인 도전은 경제상황이다. 고령화 속에서 한국사회는 저성장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내년도 성장 전망치는 3%다. 이는 더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저성장은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를 위협할 것이다. 성장이 일정 수준으로 버텨야 복지도, 일자리도, 교육도, 민생도 개선할 수 있다.

 박 당선인이 공약한 각종 민생 프로그램을 집행하려면 5년간 132조원이 새로 필요하다. 저성장으로 국가의 부(富)가 정체되면 무슨 돈으로 할 것인가. 북한 급변사태라도 터지면 막대한 돈이 필요한데 그것은 또 무엇으로 감당하나. 약속의 실천은 중요하다. 그러나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국민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한 통치다. 대통령은 진정성으로 국민의 마음을 잡고 현실을 돌파해 내야 한다.

 독신 박근혜는 나이 육십에 국민에게 청혼했다. 국민은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그는 사랑받는 신부가 될 것인가. 박근혜와 국민의 결혼생활은 행복할 것인가. 많은 게 박근혜에게 달려 있다. 정권을 그들만의 권력으로 생각한 대통령들은 실패했다. 막판에는 모두 친인척 부패와 사법처리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박 당선인은 이런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권력을 ‘그들’의 품에서 끌어내어 민생 앞에 바쳐야 한다. 인수작업 2개월이 첫 번째 시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