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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엄청 실망하게 될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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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엄청 실망하게 될걸.”

 1953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8년간의 대통령직을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며 한 말이라고 한다. 후임자가 군인 출신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란 걸 떠올리면서다. “이 친구가 곧 이 자리에 앉겠지. 그러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겠지. 하지만 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걸. 불쌍한 아이크(아이젠하워). 군대 같은 줄 알겠지. 하지만 천만의 말씀.”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책실장까지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자신의 책(『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에서 인용한 일화다. 김 교수도 대충 트루먼과 비슷한 생각이다. 밖에서 보듯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론 어떨까?

 대통령은 당선되는 순간 가장 막강하다. 가장 자신만만한 때이기도 하다. 참모들의 심리도 유사하다. 선거에서 써먹은 기술 중 대통령실에서도 원용 가능한 게 홍보와 일정·메시지 정도인데도 분야를 불문하고 대거 대통령실로 향한다. 그러곤 대통령 당선인도, 참모도 준비됐다고 믿는다. 실상은 정반대인데도 말이다.

 그런 가운데 당선인은 인선 고민부터 한다. 대통령직인수위를 어떻게 꾸릴지, 조각(組閣)은 어떻게 할지 두고서다. 명단이 주머니 안에 있을 리 만무하다. 쓸 사람이 없다는 걸 갑자기 깨닫는다. “사람, 사람, 사람!” 존 F 케네디가 선거 3주 지나 했다는 탄식이다. 당선인에겐 정치적 빚도 있다. 때때로 부적격자를 고르는 이유다. 정치적 타격도 입는다. 당선인의 책상엔 결재서류도 쌓인다. 그간 결정을 미뤄둔 사안들이다. 자신감은 넘치되 국정 이해도가 바닥인 가운데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의미다. 위기인 거다. 대통령의 큰 실수는 대개 이처럼 승리의 여운이 남아 있는 시기에 나오곤 한다.

 어쨌든 새 정부는 도취감 속에 출범한다. 언론도, 국회도 친절하다고 느낀다. 딱히 방어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일 대부분은 전 정부의 탓이니 말이다. 대통령의 지지율도 높다. 하지만 이런 시기는 1년 정도일 뿐이다. “할 수 있는 건 첫해에 다해라. (국회에서) 얼마나 다수냐가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대접해 주는 건 그 한 해뿐이다”고 토로한 이는 워싱턴 터줏대감 출신 대통령 린든 존슨이었다.

 국내 스캔들이 터지기 시작하고 외교 문제도 발생한다. 참모들의 문제점도 드러난다. 대통령이 일을 하면서 소외되는 사람도 생긴다. 재임 기간이 길어진다는 건 그만큼 서운해 하는 사람이 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용했던 사람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떨어진다.

 첫해가 끝날 무렵 대통령은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깨닫는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늘 벌어지고, 계획했던 일은 기대만큼 실행되지 않는다는 거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과 씨름하느라, 다른 이의 잘못을 바로잡느라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느낀다.

 대통령은 점차 안으로 침잠한다. 신문을 읽는 일이 꺼려진다. 신문이 결코 자신과 자신의 정부를 공명정대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 기자회견을 피하게 되고, 호의적인 매체와만 만난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는데 해놓은 일이 없다고 느낀 대통령은 직접 일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대통령실 몸집이 커진다.

 정치학자 스티븐 헤스가 그려보인 미국 대통령들의 항로다(『Organizing the presidency』). 그는 어느 대통령도 진정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부를 운영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우리 대통령도 별반 차이 없을 거다. 옆에서 지켜본 이명박 대통령의 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선 대통령도, 앞으로 대통령도 그럴 거다. 그런 길을 걸으면서 성공도 하고 좌절도 하고 공도, 과도 쌓는 것이다.

 참고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했던 트루먼 대통령은 근래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매번 10위권 이내란다. 괜찮았던 대통령인 것이다. 자신의 기대에 못 미쳤을지 모르지만 국민적 평가는 얼마든 다를 수 있는 거다. 어제 뽑힌 새 대통령은 어떨까. 그의 선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