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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에 스러진 배호 2012년 겨울, 재즈로 환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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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말로(왼쪽)와 배호의 얼굴로 장식한 새 앨범 표지.

‘불멸의 가수’ 배호(1942~71)가 타계 41년 만에 재즈로 다시 태어났다. 재즈 가수 말로(41·본명 정수월)가 배호의 노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말로 싱즈 배호’ 앨범을 내놨다.

 말로는 힘과 섬세함을 함께 갖춘 재즈 보컬리스트다. 1990년대 중반 미 버클리음대에서 유학한 뒤 98년 1집 ‘셰이드 오브 블루’로 데뷔했다. 화려한 스캣(scat·의미없는 음절을 이어 자유롭게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말로의 이번 앨범은 2010년 전통 가요를 재즈로 재해석한 ‘동백아가씨’에 이은 ‘K-STANDARDS’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그는 2010년 배호를 소재로 한 뮤지컬 ‘천변카바레’의 음악감독과 극중 ‘정수’ 역을 맡아 배호와 음악적 인연을 맺었다.

 말로는 총 6곡이 실린 이번 미니 앨범의 프로듀싱과 편곡을 도맡았다. 재즈를 근간으로 다양한 장르의 어법을 빌려와 배호의 히트곡을 새롭게 빚어냈다.

 구체적으로 배호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돌아가는 삼각지’는 보사노바와 스윙 리듬으로 편곡됐다. 중후한 저음의 남성적 매력이 담긴 원곡이 기타·피아노 연주가 함께하는 경쾌한 곡으로 바뀌었다.

 또 탱고로 재해석된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에는 가수 최백호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전통적 탱고 리듬 위에 굵고 호소력 있는 최백호의 목소리와, 허스키한 말로의 보컬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뤄낸다. 흐느끼는 듯한 아코디언 연주도 돋보인다.

 그런가 하면 트로트 리듬의 ‘누가 울어’는 발라드 곡으로 바뀌었다. 하프를 연상시키는 키보드 사운드, 우수에 찬 트럼펫 연주가 귀에 쏙 들어온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원곡과 180도 다른 느낌의 블루스로 새로 태어났다. 한국적인 배호의 히트곡이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이 음반이 배호의 팬들에겐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배호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스물아홉 나이에 요절한 청년 배호를 2012년으로 불러낸 말로는 “40여 년 세월을 가로질러 내 앞에 선 젊은 그에게, 다시 이 노래들을 바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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