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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때 주일 조선 공사관|풍물첩서 사진 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887년 한말의 주일 조선 공사관 (조선 공사관) 개설 당시의 공사관 모습을 알리는 사진이 나타나 한·일 외교사의 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진은 「기따가아·지시까시」가 소장하고 있는 1893년 동경 「간다」 (신전)의 「에기」 (강목) 상점 발행의 「동경 경치 사진첩」에 수록된 것으로 「기따가아」씨는 지금은 명소를 수록한 이 사진첩을 『약 10년 전 「나고야」시의 헌 책방에서 사들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진을 구 일본 역군의 「참모부 역군부 측량국」에서 1884년에 측량하고 1887년에 발간되었던 지도와 견주어 보면 약도와 같다. 궁성의 언저리에 위치한 「반초」 일대는 당시「하따모도」 저택 지역이며 1857년 (안정 4년) 작성된 「에도」 「기리에즈」를 보면 「스기우라·이세노가미」 「오따·이즈로」「다까끼·도라지로」 등의 「하따모도」들이 살고있다. 이 지역은 2차 대전 때 공습으로 타 버렸다.
사진은 전신주가선 현관 (나가야몽) 그리고 고용인들이 기거한 듯한 길가에 면한 행랑 (왼편) 모습만을 전하고 있으며 공사관 본관은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안 측 대지에 서양풍으로 새로 지었던 것 같다. 폭 36「미터」, 길이 90.9「미터」의 대지에는 연못을 곁들인 정원이 있다.
이 사진을 지난 24일 김동조 주일 대사에게 전한 「기따가와」씨는 『그 당시 흔히 볼 수 있었을 「하따모도」 가옥이 희귀한 명소와 문맹 개화기의 대표적인 건물만을 수록한 사진첩에 왜 끼어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 모두 4권으로 된 이 사진첩에는 한국공관과 「러시아」 공사관만이 올라 있다. 일본 외무성 자료실에도 명치 시대 때의 「조선 공사관」 사진이 간직되어 있지 않다. 【동경=강범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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