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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결정적 실수, 감싸 안는 게 부모 아니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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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JTBC 주말극 ‘무자식 상팔자’에서 대가족 장남으로 나오는 유동근. 그는 “배우 모두 단합된 힘을 보여 주었다. 그 하모니를 이룰 수 있었던 건 김수현 작가, 정을영 감독 덕이다”라며 겸손해했다. [하지영 기자]

왕 전문, 묵직한 카리스마, 선 굵은 저음….

 배우 유동근(56)을 떠올렸을 때 쉽게 연상되는 단어다. 그는 지난 30여 년 한국 드라마에서 강한 남자의 상징이었다.

각종 사극과 현대물에서 왕·장군·대기업 회장 역할 등을 맡았다. 남성적이고 무게감 있는 연기를 펼쳐왔다. 연산군(‘장녹수’)·태종 이방원(‘용의 눈물’)·흥선대원군(‘명성황후’)·연개소문(‘연개소문’) 등등. 코미디 영화 ‘가문의 영광’ ‘첫사랑사수궐기대회’ 등에서 가벼운 모습도 보여줬지만, 대중의 뇌리엔 역시 ‘강한 남자 유동근’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런 유씨가 색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JTBC 주말드라마 ‘무자식 상팔자’(극본 김수현)에서다. 노부부와 세 아들 부부, 그들 자녀들의 일상을 경쾌하게 다룬 이 드라마서 유동근은 사람 좋지만 심약하고, ‘허당’ 기질까지 있는 대가족의 장남 희재 역할을 맡았다.

 아버지(이순재) 눈치 보랴, 아내(김해숙)의 뜻을 따르랴, 미혼모 딸(엄지원)을 위로하랴, 가족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죽이는’ 캐릭터다. 겉으론 강해 보여도 속으로는 약한 우리 시대 많은 가장들의 자화상일 수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대가족의 한복판에 서 있는 유동근을 14일 만났다.

 -김수현 작가 작품에 두 번째 출연이다.

 “2000년 ‘은사시나무’(SBS)에 이순재 선생님 아들로 출연했다. 12년이 지났고, 그 동안 사극을 주로 했다.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촬영 현장에서 대사가 조금만 틀려도 NG가 난다는데.

 “다른 드라마에선 애드리브가 용서 되는데, 김 작가 작품에는 애드리브가 효과가 없다. (대본에 적힌) 대사의 디테일한 맛을 그대로 해줘야 효과가 있다. 처음엔 뭔가 가둬놓고 하는 것 같아 답답한 구석도 있었는데, 이것도 훈련이 되면 재미있다. 더 어려운 걸 해낸 재미랄까. 뭐 하나 빠트리면 안되니 죽어라 외워야 한다.”

 -대본에 문장간 호흡 길이까지 정해져 있다고 들었다.

 “땡땡땡(마침표를 뜻함)이 어떨 땐 세 개, 어떨 땐 다섯 개다. 그걸 지켜야 대사의 표현이 정확해진다. 지금 이제 그 땡땡땡을 배우고 있다. 허허.”

 극중 희재는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다. 아이스크림 그릇을 든 두 아들에 “한 입만…니들 한입씩 어떻게 안되겠니?”라고 애처롭게 말해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 데 성공하지만, 아내에게 들켜 혼이 난다. 또 동생 희명(송승환)이 아내(임예진)와 다툰 얘기를 듣고 자기 일처럼 눈물 흘린다.

‘무자식 상팔자’의 삼형제. 왼쪽부터 윤다훈(희규)·송승환(희명)·유동근(희재). [사진 JTBC]

 -힘을 뺀 연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한 신(Scene) 안에 울고, 웃기고, 울리는 부분이 있다는 게 참 절묘하다. 상당히 연극적인 기법이라 생각한다. 배우로서 해볼 만한 훈련이다.”

 -30여 년 연기에도 훈련이 필요한가.

 “나도 다 끝난 줄 알았다. (웃음) 그런데 이 작품은 신인 입장에서 하고 있다. 그 동안 일련의 작품 중 ‘저건 했구나’라고 개인적으로 만족감이 드는 작품이 ‘용의 눈물’ ‘명성황후’ ‘조광조’ ‘애인’ 등이다. 그런데 ‘무자식 상팔자’는 신인 입장으로 안 갈래야 안 갈 도리가 없다. 대본의 치밀함이 배우들을 긴장·집중하게 한다. 여기에 거듭되는 훈련, 현장에서 연출 정을영 감독의 리더십 덕분에 다른 작품에 비해 두 배 이상 준비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유씨는 1980년 JTBC의 전신인 TBC 공채탤런트 23기로 연기에 발을 들여 놓았다. “월급 한 번 받은 뒤 (언론사) 통폐합이 됐다. 그 뒤 배역이 없어 1년간 제작부 막내로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했다.

 -희재란 인물은 유약해 보인다.

 “희재는 주변 인물을 모두 배려하는 인물이다. 미혼모가 된 딸 때문에 충격 받을 아내와 부모님의 아픔을 걱정한다. 또 이 드라마 속 삼형제에겐 각기 사회 이슈가 투영돼 있다. 큰 동생은 퇴직 뒤 가정 불화를 겪고, 막내 동생은 자식이 없다. 희재는 늘 동생들의 기분을 염려하고, 그들 가정에 불화가 없는 것을 보면 행복해한다. 이런 희재란 인물이 참 절묘해 김수현 선생님께 고맙다.”

 유씨는 극중처럼 실제 90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고 했다. “희재만큼 효자인가”라고 묻자 “그만큼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실 때 팔은 잡아줄 수 있는 아들”이라고 했다.

 -극중 잘난 딸이 미혼모가 된다. 실제 자녀들과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나.

 “자식이 결정적인 실수를 했을 때 부모들은 감싸 안게 되더라. 딸이, 아들이 그런 큰 상처를 받았을 때 받아줄 수밖에 없고 품에 안아줄 수밖에 없는 게 부모더라.”

 그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가문의 귀환’에서 다시 한 번 조폭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사극·코미디·홈드라마 구분 없이 고른 연기를 보여주는 것, 연기자 유동근의 가장 값진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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