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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소묘|맹호부대 안종문 소위의 「스케치·북」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안종문 소위는 서울대학교미술대학을 졸업한 ROTC출신. 작년 10월 월남에 파견된 후「빈케」서 북무중이다. 바쁜 군무의 틈을 타서 월남의 이 모습 저 모습을…「스케치」한 그림을 본사에 편지와 함께 보내왔다. 【편집자주】

<여름보다 더운 겨울‥추수기는 흐뭇한 계절>
H에게.
요즘 월남은 겨울이란다. 그러나 눈도 오지 않고 우리 나라 여름보다도 더 더운 편. 습도가 74∼77%가 되는데도 월남에서는 가장 건조한 기후라고들 한다.
한쪽은 파란 벼 모가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추수를 하고 타작을 하고 있으며, 또 한쪽에서는 이랑을 만들고 벼를 심어, 높은 산 위에 오르면 한눈에 세 계절을 보는 셈이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질병에 허덕여온 이들에게도 추수기는 흐뭇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굶주린 배를 옴켜쥐고 있다가 추수 때 밥을 한꺼번에 먹여서 논 이랑이나 초가집 마당가에서 철없이 노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불룩 나온 배가 밑으로 처져있다.
농사를 짓는 것은 대부분 여자들. 그들의 표정은 한껏 선량해 보이는 대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베트콩」이 따로 없고 착해 보이는 농민이 순식간에 「베트콩」으로 변해 공격을 해오기 때문이다.
우리부대 「티·엔·티」에 의해 두 차례나 손해를 보았다. 차 두 대가 완전히 「엔진」이 달아나고 소대장이 얼굴과 다리에 중상을 임은 일도 있단다.

<동양인다운 자존심 「따이한」엔 뭣인가 통해>
농촌의 여인들은 대개 검은빛의 중국풍 옷을 입는다. 논에서 일할 때는 바지모양 달라붙은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남자처럼 일을 한다.
논에다가 벼를 심기만 하면 1년에 세 번, 우리 나라처럼 김을 몇 번이나 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쌀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게으르고 천하태평이다.
농촌 집안에 들어가면 몸 옷 어디서나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난다. 처음에는 구역질이 나며 참기 힘들 정도란다.
어린애들은 대개 벌거숭이들. 흙 위에서 마구 뒹굴며 논에 일하러간 어머니를 기다린다.
동민들의 성품은 동양인답게 자존심이 쓸데없이 강하다. 그러나 원조덕분에 이제는 비굴할 정도로 손도 잘 내민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돌아서서는 욕도 한다고.
미군들에겐 무언가 열등의식 때문인지 좀 어색해하는 기색이 짙다. 그러나 같은 유색인종인 「따이한」에게는 처음 만나도 무언가 통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낸다.

<멋있는 옷 「아오자이」 거추장스럽지만 청량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수송과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대로 만든 나룻배로 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월남사람들의 양쪽다리는 형편없이 벌어져 있는게 보통이다. 심한 안종다리 모양다.
그러나 「사이공」시내에서 하얀 「아오자이」라는 옷을 입은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맵시 있게 가는 모습은 더위에 지친 눈에 청량제란다.
H가 보아도 몸의 곡선이 환히 들여다보일 듯 넘실대는 명주옷의 매력에는 두 눈이 휘둥그래 질게다.
불안한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에서도 어찌 보면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아오자이」를 여인들이 여전히 입는 것을 처음에는 나도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단다.

<한국기후는 「넘버·원」 안타까운 평화에의 염원>
H.
한국은 지금 영하 7도라지? 그런데 여기는 억수간은 비가 쏟아진다.
어제 밤 10시 「베트콩」을 후송차에 싣고 「반케」경찰서까지 달렸었다.
도중에 2개의 죽창문과 한 개의 다리가 있는데 거기를 지나다 총알세례를 받을 뻔했다. 언제 어떻게 날아왔는지 운전대 옆에 앉은 내 얼굴의 바로 앞을 스쳐 지나 간 것이다.
이런 일도 부대에서 휴식시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된다.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선량한 농민과 「베트콩」을 구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6·25를 되새기며 월남에 평화가 되돌아오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결심은 우리 저마다의 가슴속 깊이 용솟음 친다.
내일은 또다시 화랑작전, 독수리 1호 작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뭐니 뭐니해도 우리한국의 기후가 가장 좋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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