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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탕평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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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정진홍
논설위원

# 『서경(書經)』 홍범(洪範) 편에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탕탕평평’이고 이를 줄여서 ‘탕평(蕩平)’이라 말한다. 당파 간의 정치적 대립과 분쟁을 넘어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융합된 상태를 이름이다. 정조는 조선의 폐해가 당파와 붕당(朋黨)에서 발원함을 직시했다. 자기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비극도 붕당정치의 폐해와 무관치 않음 역시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간절히 탕평을 원했다. 그래야 자기도 살고 백성도 살며 나라도 산다고 확신했다. 그야말로 정조의 꿈은 탕평 그 자체였다.

 # 정조의 비밀스러운 편지를 모아 담은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을 보면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윤함이라는 자가 또 상소를 올리려 한다는데, 어찌 이렇게 함부로 올리는 일이 있단 말인가? 요동의 돼지와 비슷하다. 만류할 수 있다면 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이노춘이 상소한다는 소문도 정말인가? 그에게도 굳이 잘못된 짓을 본받지 못하도록 하라.” 언뜻 보면 정조가 상소를 못 올리게 여론조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이명현이란 자가 정조를 가리켜 지나치게 엄격하고 급하게 처분을 내린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윤함이 임금을 비호하며 반박 상소를 올리려 하자 ‘요동의 돼지’라고 까지 험하게 꾸짖으며 극력 저지한 것이다. 이노춘에게도 마찬가지다.

 # 정조는 자신이 욕먹어도 좋으니 자기를 위한답시고 반박 상소 따위는 하지 말라며 되레 질책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 은밀한 부탁을 정조와 대립각을 세웠던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에게 했던 것이다. 정조는 왜 반대파의 거두에게 은밀하게 편지를 건네고, 자신을 엄호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부추기고 칭찬하긴커녕 꾸짖기까지 한 것일까? 이유는 오직 하나, 탕평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정조는 탕평에 모든 것을 걸었다. 탕평을 해야만 나라가 산다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 212년 전 오늘이었던 1800년 음력 11월 3일, 정조의 발인(發靷)이 창경궁 환경전에서 거행됐다. 정조 임금이 같은 해 음력 6월 28일 창경궁 영춘헌에서 갑작스럽게 승하한 후 123일 만의 일이었다. 모두 4책으로 구성된 『정조대왕국장도감의궤(正祖大王國葬都監儀軌)』에는 발인하여 장지까지 옮기는 국장행사의 모든 기록이 세세하게 담겨 있어 200년 넘은 시절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실로 정조의 붕어(崩御) 이후 그를 떠나 보내는 절차로서의 발인은 우리 역사 속에 또 하나의 분수령으로 기억될 만한 이정표다. 그 무엇보다도 정조의 꿈이었던 ‘탕탕평평’도 그를 장사 지냄과 동시에 역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후 탕평의 꿈마저 무산된 조선은 60여 년에 걸친 세도정치로 완전히 골병이 들었고 급기야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마저 망해버리고 말았다.

 # 정조의 오롯한 탕평의 꿈이 사라진 지 200여 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탕평의 꿈을 꾼다. 이번엔 임금 혼자의 꿈이 아니라 온 국민이 열망한다. 이번 대선의 핵심은 불량정치의 추방이다. 불량정치를 만든 근원은 탕평의 부재다. 그런 고로 탕탕평평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요 숙제다. “과연 누가 진정 탕평의 꿈을 이룰 것이냐”가 이번 선거의 핵심인 셈이다. 물론 탕평은 단순한 자리 갈라먹기나 지역안배가 아니다. 진정한 탕평은 “내 깃발 아래 모여라”가 아니라 내가 “모든 이들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겸허한 의지의 리더십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이가 이번 대선의 진짜 주인공이요, 그런 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래야 국가적·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고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 이제 나흘 후면 국민이 선택한다. 그 선택에 대한민국의 국운이 달렸다. 정말이지 탕평의 꿈이 다시 펼쳐질 수 있는 역사적인 선택이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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