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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푸틴의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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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나이, 출신지, 개혁적 성향, 대외 인지도, 인사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비슷하다.

푸틴은 항도(港都)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노무현 당선자도 항구도시 부산 출신이다. 둘다 전임 대통령에 의해 지명됐거나 그의 기반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후계자로 선정됐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의 지지도가 경쟁자에 비해 형편없이 낮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당선 후 인사 스타일도 비슷하다. 푸틴은 당선 후 내부 파워게임을 벌이던 신(新)실세들에게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선 당신들 전부도 모자란다"며 핵심부서 몇자리를 제외한 '화려한 자리'는 관료와 전문가 집단으로 채웠다.

대신 '개혁에 꼭 필요한 자리'를 신 실세들로 채웠다. 또 옐친 때 비서실장 등을 역임한 볼로신, 프리호드코 외교수석 등 크렘린 핵심 참모진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노무현 당선자의 첫 비서실장은 범(汎) 동계동계로 DJ와 가까운 문희상씨다. 또 그는 북한에 대한 정책과 주변국 외교정책도 전임 정부와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것임을 수차례 밝히고 있다.

두사람은 당선되기 전까지 외국에 비교적 무명이며 민족주의적 성향의 지도자로 평가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취임 후 푸틴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東進),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협정탈퇴 위협 등의 난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노무현 당선자가 직면한 북한핵 위기에 못지않은 엄청난 난제였다.

푸틴은 자존심을 외치는 군중과 군부의 격렬한 저항을 뿌리치고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다. 9.11 이후엔 중앙아시아에 미군의 주둔도 용인했다. 하지만 그는 배신자로 찍히기보다는 70%대가 넘는 인기를 자랑한다.

정치적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은 그가 슬로건에 경직되지 않은 실용주의적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국민들을 상대로 용서를 빌고 '현실의 한계'에 대해 설득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변명에만 매달리지 않았고 옐친이 돈이 없다며 내팽개쳤던, 교육과 과학기술 등에 눈을 돌려 미래에 대한 꿈을 주었다.

푸틴은 젊고 활기찬 지도자가 한 나라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도자로 자주 묘사된다. 노무현 당선자가 과연 푸틴처럼 성공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실용주의적 개혁을 기대한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