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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오르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텔리비」나 「라디오」라도 좋다. 혹은 국민학교 교실이라도 상관없다. 아이들이 책을 읽거나 말하는 어투를 한번 조심해서 들어 보라. 분명히 그것은 보통말씨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머니에게 푼돈을 조르거나, 길거리에서 저희들끼리 놀 때 말하던 그런 말투가 아니다.
우선 어조가 부자연스럽다. 긴장된 「인토네이션」은 낭독조로 꾸며져 있다. 어째서 그럴까? 여러 사람 앞에 나서면 왜 어투가 변해야하는가? 저희들끼리 이야기하듯이 왜 자연스럽게 말하지 않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아직도 우리가 민주적인 생활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는 사생활을 그대로 확대하여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습관이 되어있지 않다. 개인과 사회가 괴리되어 등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중적인 구조 속에서 숨쉬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한 개인이 여러 사람 앞에 나서면 그 목소리와 어투가 모두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공중 앞에서 자신을 위장하려는 것이 거의 본능처럼 되어버렸다. 그래서 작든 크든 우리는 두개의 어투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 「생활과 관념」, 「현실과 이상」, 지식과 내용」- 그것들은 서로 분열된 채 너무도 먼 거리에서 동 떨어져있는 것이다. 가두에서 나부끼는 그 숱한 「플래카드」의 구호만 해도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방지대에 떠있는 장식품이다. 구호는 구호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평행선을 긋고 달리는 세상이다.
올해의 구호는 「더 일하는 해」로 되어 있다. 「일하는 해」로 정해 놓고 실제로는 「먹는 해」요, 「두들겨 패는 해」, 물가를 「올리는 해」쯤으로 행세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여러 사람 앞에 나서면 다 「일하는 해」라고 점잖게 말한다. 금년은 「더 일하는 해」라는데 신년부터 들리는 소식은 물가가 「더 오른다」는 이야기뿐이다. 정초를 기해 체신요금과 주세가 올랐고 또 16일부터는 「택시」요금, 몇 개월 뒤에는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것이고 사립대학입학금은 백%오를 것이라는 「뉴스」다. 결국 「더 일하는 해」는 「더 올리는 해」로 막을 연 모양이다. 하기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의 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그렇다 우리는 이중적인 언어 속에서 살고있는 「카멜레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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