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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인터넷 규제 밀실 논의를 멈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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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

인터넷은 우리가 말하고 배우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인터넷 사용 인구는 이미 20억 명을 넘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육박하고 있다. 인터넷은 21세기 경제의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로 부상했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수천 개의 기업과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벨의 전화기를 비롯한 인류의 어떤 발명품도 인터넷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이 위험에 처해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이달 3일부터 14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서 24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전기통신규칙(ITRs)을 개정하려고 한다. 기술 발달을 반영해 규칙을 바꾸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이를 계기로 몇몇 정부가 인터넷 통제 정책을 강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권위주의 국가들은 개정안에 인터넷상의 발언을 검열하거나 인터넷 사용까지 막을 수 있는 조항을 넣으려고 하고 있다. 반체제 인사들을 쉽게 색출하고 체포하기 위해 인터넷상 익명성 금지를 제안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심지어는 인터넷 콘텐트 제공자가 국경을 넘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통행료 개념의 요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 결말은 어떨까? 제2의 유튜브·페이스북·스카이프가 되고자 지금 저 어딘가 차고에서 노력하고 있을 벤처 창업가들은 아마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분명히 해 두자. ITU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ITU는 그간 전 세계의 유·무선 통신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고, 개발도상국에 투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다만 정부들만의 기구인 ITU에서 인터넷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ITU에서는 오직 정부들만 투표권을 행사한다. 여기에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터넷을 지지하지 않는 정부도 포함돼 있다. 또 정작 인터넷을 구축하고 사용하고 있는 엔지니어·민간기업·사용자들은 투표권이 없다.

 투명성과 개방성은 정책 결정에서 정보 공유를 통한 참여를 이루는 데 핵심이 있다. 현재 일반 사용자들은 ITRs 개정과 관련해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정보조차 얻을 수 없다. 개정 협상 자체가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신중한 정책 개발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160개 이상의 국가에서 모두 1000개가 넘는 단체가 두바이에서 열리는 이 비공개 회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몇몇 정부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인터넷 확산 가속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글로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시장이 주도하는 접근 방식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정부 통제를 받는 시스템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도 없다. 규제가 생길수록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필연적으로 상승하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인터넷이 처음으로 상용화된 이후 우리가 목격한 인터넷의 빠르고 유기적인 성장이 저해될 것이다.

 역사는 경고한다.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개발한 지 불과 수십 년도 지나지 않아 당시 권력자인 군주와 사제들이 책을 출판할 권리를 제한해 버리지 않았던가. 정부가 유해 콘텐트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정보에 대한 접근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며 세계인권선언문에 규정돼 있는 자유 권리를 제한한 무수한 사례들로 우리 역사는 가득 차 있다. 인터넷이 이런 운명에 처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함께 나설 때다.

 ◆빈트 서프(69)=미국 전산학자로 인터넷과 통신규칙(TCP/IP 프로토콜)의 탄생을 주도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린다. 자유로운 인터넷 발전을 위해 1992년에 인터넷협회를 창립했다. 현재 구글의 부사장 겸 수석인터넷전도사를 맡고 있다.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