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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일의 문턱(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수용태세>
국교 정상화 이전에 이미 「일본경제」는 기간산업 공장에서 백화점의 「쇼윈도」, 바다에 뜬 어선에서 땅위의 각종 수송수단에 이르기까지 우리주변에 속속들이 스며있다. 그나마 막혔던 「둑」이 터지고 개방된 현해탄을 넘어들 「일본의 물결」앞에 한국은 사실상 무방비지대-.
절정에 다다른 「고도성장」의 배출구를 찾는 일본경제가 한국에서 시장진출을 기도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경제의 대한진출에는 우리의 국내법이 허용하는 일반적 경로와 법의 맹점을 뚫는 음성적 「루트」까지가 다각적으로 이용될 것이며 또 대상분야도 극히 광범위하다.
우선 일본은 금후 10년간에 총8억불 이상의 각종 시설 및 원자재와 용역을 한국에 제공한다.
그것이 비록 청구권의 이름을 빈 것이긴 하나 엄격히 따져 무상 3억불을 제외한 나머지부분만큼 일본의 대한수출은 확대되며 거기에다 대상물품과 용역의 선정까지 그르치면 한국은 한낱 소비시장이 되어버릴 우려가 있다.
사양공업의 잉여시설과 소비성 원자재가 마구 도입되면 「혈채」는 무산하고 야심적인 2차 5개년 계획에도 차질이 온다. 따라서 정부는 청구권 관리위구성, 특별회계 설치 및 처벌 조항에 이르기까지 사전준비에 만전을 기해야하며 사용계획과 가격에 관한 일본측과의 교섭에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9천만불의 어업 협력자금은 민간「베이스」로 제공되며 그렇게 불리한 조건의 차관을 영세어민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설혹 청구권자금이 효과적으로 쓰여진다 해도 이 시설과 자재를 도입한 분야의 조업유대를 위해선 계속적인 대일 의존이 불가피 해진다.
가중되는 대일 의존도와 이로 인한 일본상품의 「홍수」에 맞서려면 대응 수출을 통한 교역균형화조치가 취해져야하며 당연히 예상되는 일본상사의 수주경쟁과 한국 진출에도 대비책이 서야한다. 우리보다 월등히 수준이 높은 일본 상사와 국내업자는 처음부터 경쟁이 안되며 이것을 그대로 방임하면 그들의 무대는 수주활동에서 한국상품의 수출업무에까지 번져가 한국의 무역활동을 크게 잠식한다.
여기에 변승하여 은행·보험이 진출하고 일본자본이 증권업계에 대량 침투할 수도 있으며 기술협조의 명목으로 공업소유권이 대거 진출할 것도 예상된다.
이러한 「일본의 물결」은 표면상 우리의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에 국한되며 또 그것으로만 끝난다면 정부의 새 입법을 통한 각종 규제가 「제동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일본경제의 급격한 대한진출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조치들을 서두르고있으며 이렇게 「타이트」한 대일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꾸어지지 않는 한 「일본」이 한국에서 거세게 「범람」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은 상업활동의 철리이며 실제로 「일본」앞에 노출된 「한국의 허점」은 너무 많다.
역사적 관계와 지정학적 조건을 제쳐놓고도 부족한 자본, 뒤떨어진 기술, 헤아릴 길 없는 실업자라는 「핸디캡」이 한국에는 있다. 모처럼의 「찬스」에 말려들 한국국적을 가진 한국 속의 「일본인」들은 너무나 많다.
그들이 「국리」에 눈감고 「사리」에 급급하여 주체성을 잃을 때 「일본경제」는 대한진출의 첨병을 얻고 그것을 발판으로 음성적 침투의 폭과 깊이는 무한정으로 늘어날 수 있다. 문턱에 선 새한·일 관계는 국민의 도의심과 주체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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