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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사랑만으로 안돼

중앙일보

입력

"그래, 니가 이겼어. " 결혼이 덫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결혼에 미적미적한 태도를 보였던 지미(크리스 오도넬) 가 3년째 사귄 앤(르네 젤웨거.사진) 에게 어느날 이렇게 청혼한다. 마치 네가 이만큼 기다렸으니 할 수 없이 결혼한다는 투로.

하지만 낭만적인 청혼을 기대한 앤은 "사랑한다고해서 꼭 청혼해야 하는 건 아냐. 남편이 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지!" 라며 지미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한다.

그러자 지미에겐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인해 스물네시간 안에 결혼해야할 급박한 상황이 닥치는데 마침 앤은 아테네로 출장을 떠나버린다.

1925년 버스터 키튼의 흑백 무성영화 '일곱번의 기회' 를 리메이크한 '청혼' 은 결혼을 바라보는 남녀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 지를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다. 결혼으로 가는 관문인 청혼을 통해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함께 묻는다.

'제리 맥과이어' (1996년) 로 순박한 얼굴을 알렸고 '너스 베티' (2000년) 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 (2001년) 로 최고 스타 대열에 오른 르네 젤웨거가 이번에는 아름다운 청혼을 기다리는 귀여운 여인 역을 맡았다.

3년간 사귄 애인에게 황당한 청혼을 받고 화들짝 놀라며 화를 내거나 빨간 원피스를 입고 살사 댄스를 추는 젤웨거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동생 역의 말리 셀튼과 정신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연기에선 '너스 베티' 에서 보여준 젤웨거 특유의 상큼함이 묻어난다.

이 영화는 '너스 베티' 보다 먼저인 1999년에 제작됐다. 여태껏 개봉이 보류되다 절정에 오른 젤웨거의 인기 덕에 빛을 보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다.

젤웨거의 연기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은 1천명의 신부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결혼하면 1억달러를 공동 소유할 수 있다는 말에 몰려든 신부들이 도망가는 신랑을 쫓아 경사가 가파른 샌프란시스코의 언덕을 내달리는 장면은 장관이다.

8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 브룩 실즈가 경제적 사정으로 정략 결혼하려는 버클리 역으로,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 역시 지미에게 또다른 청혼을 받는 여인 일라나로 출연해 눈길을 끈다.

예전같은 매력은 없지만 한층 원숙해진 브룩 실즈가 막상 지미와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 먹지만 결혼 조건이 생각한 것과 조금씩 달라지자 결혼식을 중단하고 초조하게 담배를 피는 노련하고도 걸쭉한 연기를 보고 있자면 짧지만 '격세지감(隔世之感) ' 이란 사자성어가 머리를 스친다.

구성이 다소 산만한 것이 흠. 게리 시뇨르 감독. 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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