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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민주화’ 헤지펀드 울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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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요즘 헤지펀드가 힘을 못 쓰고 있다. 시장 평균을 뛰어넘는 수익은커녕 주가지수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인덱스 펀드에도 수익률이 못 미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헤지펀드의 수익률은 평균 4.7%로, 같은 기간 주식형 펀드(5.5%)보다 못하다. 2009년 이후 4년째 헤지펀드의 성과가 주식형펀드에 못 미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저평가된 주식은 사고(롱) 고평가된 주식은 팔아(숏) 수익을 내는 ‘주식 롱숏(Equity Long-short)’ 전략을 사용한 헤지펀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장(S&P500)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은 높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사정이 나빠졌다. 헤지펀드의 수익률이 해마다 떨어지더니 급기야 최근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헤지펀드 ‘황금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시장에 돌 정도다.

 왜 헤지펀드가 시장을 뛰어넘는 ‘플러스 알파’ 수익을 만들어내기 힘들어졌을까.

우선 시장 분위기부터 달라졌다. 정치가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발언에 모든 자산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피델리티글로벌스트레티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주리엔 티머는 이런 상황을 빗대 “S&P500지수에 속한 모든 기업은 한 명의 회장을 모시는데 그의 이름은 벤 버냉키(미 연준 의장)다”고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금리가 역대 최저로 떨어지면서 주식·채권·금·환율 등 간의 상호 움직임이 긴밀해졌다. 시장의 움직임이 비슷해졌다는 얘기다. 헤지펀드를 굴리는 매니저에겐 빈틈을 노려 플러스 알파를 만드는 게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거에 비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FT는 진단했다.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게 되면서 헤지펀드 매니저의 장점이 희석됐다. 신문은 “블룸버그(정보제공업체) 단말기 비용을 낼 여유가 있고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전 세계 기업의 수년간의 재무제표를 보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며 “버튼 하나면 기업에 대한 애널리스트의 의견이나 주주의 실체에 대해 누구나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헤지펀드 시장 규모가 커진 것도 이유다. 헤지펀드는 시장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며 초과 수익을 내왔다. 1990년대 2000억 달러이던 헤지펀드 시장은 최근에는 2조 달러 규모로 커졌다. 영국의 자산관리 컨설턴트인 데니스 바스틴은 FT와의 인터뷰에서 “헤지펀드 시장 규모가 10배는 커졌지만 시장의 비효율성은 그만큼 커지지 않아 초과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수수료 또한 헤지펀드 쪽이 비싸다. 보통 연간 자산의 2%를 기본 수수료로 떼고, 수익의 20%를 성과 보수 명목으로 떼 간다.

 최근에는 주식보다는 상대적으로 일반인의 정보 접근이 제한된 채권 쪽에서 헤지펀드가 조명받고 있다.

미국계 대안투자회사인 하이랜드캐피털의 마크 오카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9월 초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위기 이후 주식에 대해서는 규제가 강화되고 정보가 투명해져 일반 투자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며 “최근 헤지펀드 자금이 주식형에서 채권형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최근 “헤지펀드의 ‘주식 사랑’이 더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며 “2조 달러 헤지펀드 시장에서 처음으로 채권 펀드 자산이 주식 펀드를 앞서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 출범한 ‘한국형 헤지펀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1년여 만에 설정액은 1조원을 돌파했지만, 19개 펀드 가운데 수익을 내고 있는 펀드는 9개에 그친다. 대부분 펀드가 여전히 주식 쪽에 치중한다. 브레인자산운용의 ‘백두펀드’는 11일 현재 수익률이 10%에 이르지만, KDB자산운용의 ‘파이오니어롱숏뉴트럴펀드’는 -11.3%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박건영 브레인자산운용 대표는 “헤지펀드라고 하면 무조건 큰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개별 펀드마다 수익률 차이가 크다”며 “과거 운용을 얼마나 꾸준히 잘해 왔는지를 따져 펀드를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헤지펀드(Hedge Fund)

리스크(위험)를 헤지해(피해)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투자자에게 ‘절대 수익’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펀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차입(레버리지)을 통해 원래 자금보다 큰 규모로 외환·증권·선물·옵션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단기 이익을 올리는 펀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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