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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과 자학으로 저문 교육 1년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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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계의 수난> l965년의 한국 사회는 격동을 겪은 한 해였다. 그리고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이 다름 아닌 교육계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마도 아무런 이의가 없을 줄 믿는다.
연초이래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던 정국불안의 요인이 주로 한·일 협정의 찬반을 에워싼 국민여론의 양극화에 있었다는 사실과 또 그 반대 세력의 앞장을 선 것이 바로 대학사회를 위시한 이 나라 지식사회였다는 사실을 수긍한다 치더라도, 그 때문에 유독 교육계가 물심양면으로 치러야 했던 대가는 야당 정객이나 일반 사회인사의 그것과 비하여서도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이래 오직 한·일 협정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학생이 입건·구속·즉심회부 등의 처분을 받았었으며 여학생까지를 포함한 무수의 어린 학생들이 경찰곤봉과 최루탄의 세례를 받아야만 했었다. 그 중 적지 않은 수효의 학생과 교수들이 이미 학원에서 추방을 당한 채 노두를 방황하고 있으며 또 그보다도 더 많은 수효의 학교 및 학생들은 올해 들어 두 차례씩이나 거듭된 반강제적 휴교조처로 말미암아 그들의 본의와는 전혀 관계없이 80여 일의 철 잃은 방학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강경책과 자학>그러나 우리 나라 교육계가 올해 들어 치러야 했던 이와 같은 외형적 희생의 대가는 그들이 입은 내면적 상처의 깊이에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 진전을 수습하기 위하여 정부당국자가 취한 학원탄압 정책은 우리 나라 학원과 교육자 및 자라나는 젊은 세대로 하여금 참다운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관을 흐리게 하고 민주주의 적인 교육관이나 민주주의 적인 학원운영에 대한 자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상과 희망을 잃은 사회나 국가민족의 장래가 얼마나 암담한 것인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거늘, 그러한 이상과 희망을 애써 가꾸게 하여야 할 요람이요, 그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계와 또 그 곳,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그러한 민주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동요를 일으키게 하고, 나아가서 좌절감을 강요케 한 정부당국의 대 학원 강경 일변도 정책은 그 동기 여하를 막론하고 마땅히 반성되지 않을 수 없을 줄 믿는다.
오늘날 우리 나라 교육계의 사기는 말이 아닐 정도로 저하돼 있으며 교원 가운데 늘어난 자학 의식의 심도는 이미 위기선상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활고 또는 교직에 ,대한 실망을 이유로 자진하여 학원을 떠난 교원 수(중등학교 이하)는 64년도에 2천1백86명이던 것이 현 65년도에는 4월말 현재 이미 1천3백42명에 달하고 있어, 연도 말까지는 아마도 4천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내다보인다. 올해 들어 역시 생활고 때문에 스스로 교단을 등진 자살자 또는 순직 교원 수는 보고된 것만 하더라도 10월말현재 이미 18명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지난 10월 광주에서 개최된 전국 교육연구대회에 보고된 표본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초·중등 교원 중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만족을 표시한 교원 수는 불과 7.9%에 불과하고 그 나머지 92%는 거의 전원이 여러 가지 이유로 교직을 스스로 천대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는 특히 스스로의 지위를 사회계층 중 「하의 하」 또는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자학하고 있는 교원수가 4.1%나 되었고, 전체교원의 24.8%는 명백히 전직을 희망하고 있는 실정이었다고 한다.

<위기의 성격과 타개책>전국의 교원 총수를 약 20만 명으로 볼 때 이 숫자는 우리 교육계의 위기의 성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표시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는 지금 스스로 교직을 혐오하고 있는 이들 약 5만 명의 교사들에 의하여 교육 아닌 교육을 받고있는 실정이며 그 중에는 특히 교직을 「쓰레기통」에 비유하는 8천2백여 명의 교원이 있어, 이들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매일 학생들에게 「쓰레기통」의 한탄을 들려주고 있는 셈이 된다.
이들에게 희망이나 이상이 있을 리가 없으며 하물며 장래에 대한 밝은 비전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결코 농촌의 초·중등학교 교원에게만 국한된 현상일 수는 없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할 것이다.
올해 들어 우리 나라 교육계가 겪은 수난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그 태반의 책임이 현 정부 당국자의 지나친 탄압정책에 있는 것이라 하겠으나 또 한편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 교육계를 뒤덮고있는 이와 같은 자포자기적 자학의식 내지는 극단한 무사안일주의를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승과 제자, 학교경영자와 교원 또는 문교 당국자 대 학원 사이에 두터운 신뢰와 사랑의 기풍이 감도는 대신에 불신과 경계의 장막이 가리워지고, 정의와 진리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용기와 의욕이 백방으로 찬양, 고무되는 대신에 그 반대 것에 대한 아부와 소성에 대한 만족만이 미덕으로 강요되는 상황하에서 교육은 이미 그 존재할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올해 들어 우리 교육계가 겪어야만 했던 수난이 비록 정부당국의 절제를 잃은 권력행사와 또 좀 더 근원적으로는 군정이래 누적된 상호 불신조장 정책의 귀결이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위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교원 에 대한 물심양면에 걸친 실질적인 처우개선을 다짐하는 등 정부당국의 용단과 함께 교육계 자체의 분발과 기사회생의 일대자가정풍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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