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박·문 대북정책 차이 좁혀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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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토론은 이래서 진보를 잉태하는 것 같다. 선거는 이래서 발전을 이뤄내는 것 같다. 지난주 대북정책을 둘러싼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1차 TV토론을 보면서 떠올랐던 생각이다. 우선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논란이 상당히 정리되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나서 NLL의 성격을 변화시키려는 발언을 일삼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NLL은 어릴 적 땅 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 놓은 줄이다.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인데 그 안에 줄을 그어 놓고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면 헷갈린다.” ‘남북이 합의하지 않은 데다, 영토선도 아니니 북한과 협상해서 재조정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실제 북한과 협상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 후보는 TV토론에서 노 전 대통령과는 완연하게 차이가 나는 발언을 했다. 그는 “NLL은 사실상의 영해선이어서 단호하게 사수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다”고 말했다. ‘영해’라는 개념을 나중에 번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도입한 것이다. 아마 선거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변화가 아닐까. 이에 따라 NLL에 대해선 두 후보 간의 견해 차이가 사실상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문 후보가 ‘공동어로 구역’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NLL을 ‘사수되어야 할 영해선’이라고 보는 한 북측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두 후보 간에는 ‘NLL 사수’라는 공통분모만 남게 된 것이다.

 박 후보가 역대 정부의 합의를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도 여야 간 대립을 완화할 수 있는 요인으로 의미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남북 간은 물론 남남 간에 갈등을 빚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중 하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무조건 폄하하려는 태도였다. 견해가 다른 국민을 설득하면서 정책을 추진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남북 간 합의의 정신은 존중하나 실제로 합의를 이행하려면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 이를 해소하면서 추진하겠다’고 했더라면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박 후보가 이런 점을 반영한 발언을 함으로써 문 후보 측과의 간격도 많이 줄어들었다. 박 후보가 ▶남북대화에는 전제조건이 없으며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별도로 지속하겠다고 제의한 것도 남남 갈등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야당이 늘 주장해 온 대목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박·문 후보 간에는 차이 나는 대목이 남아 있다.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에 대해 문 후보는 전제조건 없이 다 풀자는 입장이지만, 박 후보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할 수는 없다’는 자세다. 박 후보는 북핵의 비핵화와 남북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후 대규모 경협을 할 수 있다고 하나, 문 후보는 우리 국익을 위해서라도 조건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NLL, 남북합의서, 남북대화 재개 등 기본원칙에서 견해가 비슷하다면 이런 차이는 능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는 누가 당선되든 새 대통령이 전력을 기울여야 할 분야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도 남북평화를 관리해가는 능력을 발휘해야 정권의 안정이 보장된다. 선거기간 중에는 ‘진짜 평화’ ‘가짜 평화’ 하면서 논박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그 속성상 두부 모 자르듯이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채찍과 당근을 어떻게 잘 배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여야의 최대공약수를 토대로 국민적 동의를 구하려는 자세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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