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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등록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돈은 인간이 쓰기 위해서 만든것이지만, 거꾸로 돈이 인간을 부리는 일이 많다. 관은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주객이 바뀌어 관이 국민앞에 군림하는 경우가 없지않다. 이래서 인권이란것이 금권과 관권 밑에 깔려 영양실조에 걸린다.
그중에는 또 신분증이란 것이 있다. 사람의 신분이 있으니까 신분증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신분증때문에 인간이 있는 것 같은 세상도 있는 것이다. 소위 「종이가 인간을 지배」하는 희극이다. 한때 시민증이 없으면 산송장과 다름없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이 『사람살려!』라고 하지않고 『아이구 내 시민증!』이라고 외치더라는 「유머」도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이 신분증을 갖고다니는게 아니라 신분증이 사람을 끌고 다니는 격이다.
공교롭게도 인권옹호주간의 첫날 주민등록법개정법안이 끝내 차관회의를 통과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 개정법안을 보면 주민등록증을 항시 휴대해야 하며 관계기관의 요구가 있을때는 지체없이 제시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있다. 이것을 어기면 벌금이나 구류처분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앞으로 또 물에 빠지면 『아이구 내 등록증이야!』라고 외칠 「신분증 노이로제」가 생겨날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주민등록증제를 실시하는 자체에 불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주민등록증이란 것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등록증을 휴대하고 다니면 여러모로 혜택을 받는다. 외국을 여행할때는 「비자」의 역할을 하고 무료병원에 들어갈때는 진찰권을 대행한다. 그리고 무상배급을 비롯하여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덕을 본다.
그러니까 같은 신분증이라해도 이 경우엔 국민이 자진해서 휴대한다. 등록을 하지말래도 머리를 싸매고 덤벼들 지경이다.
우리의 주민등록증도 「관」만이 필요한 증서가 아니라 「나자신의 권리를 위한 종이쪽」이 되어야겠다. 그렇지 못하다는데 우리의 비극이 있고 「신분증노이로제」가 생겨난다. 「종이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인간이 종이를 지배하게 하는것」 여기에 밝은 인권이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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