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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우주·음악·꿈 … 최고의 지성 44명 경계를 허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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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이언스 이즈 컬처: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암 촘스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동아시아
432쪽, 1만8000원

뿌듯한 포만감과 함께 아찔한 절망감을 함께 주는 묘한 양면성을 가진 책이다. “펼쳐 놓아도 배부르네”하는 느낌은 물론 “왜 난 아직 모를까”하는 지적 자극을 동시에 선물하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오가는 통섭(統攝)의 방식이 그렇고, 다루는 주제 역시 가히 전방위적이다.

 “도덕과 의식은 인간의 발명품일까.” “인간이 살고 있다는 신호를 우주에 보내는 SETI(외계생명체탐사) 프로젝트는 가치 있을까.” 일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주제는 진화철학·꿈·시간·소셜네트워크를 넘나든다. 아름다움·디자인의 세계는 물론 유클리드 기하학의 종말, 프랙탈 건축 등 낯선 것도 다룬다.

 지식정보 백과사전일까. 아니다. 이 책은 우리 시대 지성 44명의 대화록이다. 신경과학자와 저널리스트, 과학자와 철학자 등이 22개 토픽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절대로 같은 분야 전공자끼리는 합석을 안 시킨다. 관전 포인트는 이들 대담자들이 ‘열린 대화’에 거의 매번 성공한다는 점이다.

 “와, 이 음악을 들으니 뭔가 영적 세계로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정신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은, 그러니까 일종의 트랜스, 즉 탈혼(脫魂) 상태….” “그건 음악에만 국한된 것은 아녜요. 경전을 암송하거나 (명상)호흡으로도 도달할 수 있죠.”(207~208쪽 요약)

 행동신경학자 대니얼 래비틴(미 맥길대학교)와 대중음악 밴드 보컬인 데이비드 번 사이의 대화가 그렇다. 과학자는 음악이 뇌의 전두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하고, 뮤지션은 “즐거운 초월적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종교에도 선입견이 없다. 이 책 22개 주제중 하나인 SETI 프로젝트도 관심거리이다.

 “휴대폰의 가치와 생명공학의 가치는 돈으로 셀 수 있지만, 지구의 미래는 가격을 매길 수 없습니다.”

 그건 칼 세이건 원작의 영화 ‘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맡은 역의 실제 주인공인 우주생물학자 질 타터의 인상적인 발언이다. 실은 이 책의 상당수 내용은 꽤 본격적이라서, 독자 수준을 ‘세상의 모든 것’에 열린 르네상스적 인간에 놓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관통하는 가치가 있다.

 첫 대화에서 『통섭』의 저자인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과 『다윈의 위험한 생각』의 저자인 철학자 대니얼 데넷은 신·진화·근친상간·사회적 규범에 대해 얘기한다. 둘이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 “의견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둘 다 어떤 도그마에 빠진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22개 주제는 우리 시대 지성의 최전선인데, 그걸 연출해낸 솜씨는 누구의 것일까. 미국의 과학잡지 ‘시드(Seed)’가 주인공이다. 지난 5년 『빈 서판』의 스타 저자 스티븐 핑거,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노벨평화상을 받은 환경학자 스티븐 슈나이더 등을 짝 지운 것이다.

 그래서 지식의 종합선물세트인 신간은 고도의 압축, 대화의 자연스러움, 전문지식의 밀도 등 3박자를 갖추고 있다. 특히 신간은 한국사회가 취약한 기초과학·기초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어 서구학계의 저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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