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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부패|이건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최근 우리 나라 공무원들의 부패가 크게 국민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공무원의 기강 문제는 바로 그것이 국정의 기강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발본 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정책도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독직 공무원을 일소하기 위하여 엄벌을 규정한 특별법의 제정을 추진중에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특별법의 제정도 하나의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써 공무원의 기강이 즉석에 숙정될 것인지는 역시 하나의 문제이다.
모든 것이 입법만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나이브」한 사고방식이 아닐까. 입법 일변도는 개혁을 서두르는 사람이 쉽사리 빠지게 되는 편향인데 이것은 환자가 약 광고에 매혹되는 것과도 같은 심리이다. 지금부터 약 1790년 전 백제 때의 형률에「이수회급도삼배상, 고종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수회 공무원에게 3배의 배상을 명령하는 동시에 종심 금고형을 과한다는 참으로 무서운 형벌이라고 하겠다.
이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위정자들은 공무원의 독직 때문에 무던히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엄형 하에서도 사도는 역시 문란하였고 바로 그 후예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률은 어떤 목적달성을 위한 하나의 방도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유일한 방도는 아닌 것이다.
공무원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인 방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다. 봉급을 인상하여 생활을 안정시켜 주라든지, 공무원으로서의 도의관념을 앙양시켜 준다든지, 정권의 변동으로 말미암아 직장의 위협을 받지 안게 한다든지 하는 것도 근본적인 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근본 대책은 행정 사무의 간소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현대국가는 소위 행정 국가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행정 사무의 팽창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레세·페르」의 시대가 이미 과거의 것이 되고 만 필연적인 결과라고 하겠다. 이래서 우리의 생활은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시작하여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부단히 관청과의 교섭을 불가피하게 하고있는 것이다. 그 많은 신청·계출·보고· 허가·인가 등이 우리의 주변에 복잡하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오물의 청소까지도 서울특별시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너무나 광범하게 관청과의 연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공무원들의 권한을 그만큼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의 권한이 증대될 때에는 부패가 수반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가능한 한 국민생활은 자율화·자치화를 도모해야된다. 예를 문교행정에 든다면 무엇 때문에 무슨 과목을 교과목에 넣어야 한다, 매 학기 이수과목은 몇 학점을 초과할 수 없다, 너의 대학은 정원이 얼마다, 등록금은 얼마를 받아야한다, 입학시험은 며칟날 몇 시에 시행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미세한 단속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가 아직 분명치 않다. 미국에서는 각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대학 연맹을 형성하여 학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 대학들보다 질이 낮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일이 없다.
권한의 집중이 공무원의 부패를 가져오는 하나의 원천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원천을 막는다는 것, 다시 말하면 행정 사무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간소화한다는 것은 관기 숙정을 위한 가장 유력한 방도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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