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이정희 난장’ 토론 대신 양자 토론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TV 토론 이정희 쇼크’가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은 모범적으로 산업화·민주화를 이뤘으며 지금 세계 10위권 주요 국가다. 이런 나라에서 대선후보 토론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1%도 안 되는 소수파 후보가 선동·매도·강변으로 토론을 난장(亂場)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를 감싸는 사람은 일부 통합진보당 당원과 급진파뿐이다. 대다수 유권자는 2차(10일), 3차(16일) 토론도 그렇게 될 것을 우려한다. 대선후보 토론이 안철수 때문에 한참 미뤄지더니 이젠 이정희로 인해 헝클어지고 있다. TV 토론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반듯한 토론을 위해선 공직선거법을 고쳐야 한다. 참가 기준을 강화해 미국·프랑스·영국처럼 2강 또는 3강 토론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현행대로라면 2007년 선거처럼 6명의 ‘정견발표회’가 되거나 이번처럼 소수파 반란 쇼가 될 수 있다. 발언시간도 현행처럼 1~3분 단위가 아니라 후보별 총량제를 통해 심도 있는 공방을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법 개정은 이번 대선에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는 대선 후 과제로 돌리고 이번엔 응급처방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정희 난장판’ 재발을 막으려면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선관위 2·3차 토론을 거부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 잘못된 방식 때문에 1차에서 토론이 망가졌으므로 박·문이 ‘추가 소동’을 거부하기에 명분은 충분하다.

 대신 박·문은 방송사가 주관하는 양자 토론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현재 문재인 후보는 이를 주장하나 박근혜 후보는 빡빡한 유세일정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선관위 2·3차 토론에 참여하지 않으면 박 후보는 양인 토론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2·3차 토론에 그대로 참여하고, 유세일정이 빠듯해도 박 후보는 양자 토론을 바라는 많은 유권자의 욕구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KBS와 MBC는 이명박·정동영·이회창 3강 토론을 확정한 바 있다. 지지율 10% 이상이란 기준을 새로 적용한 것이다. 그러자 민노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법원에 토론회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선거법은 5% 이상으로 규정하는데 방송사가 자의적으로 이를 올린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받아들였고 토론은 무산됐다.

 이번에도 방송사가 양자 토론을 확정하면 이정희 후보 등이 가처분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 법원은 5년 전 판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지난 1차 토론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는지, ‘이정희 쇼크’가 얼마나 큰지를 숙고(熟考)해야 할 것이다. 법원이 중시해야 할 것은 ‘책임 있는 규모의 유권자를 대변할 수 있는 책임 있는 후보들의 토론’이다. 공정이란 위장 완장을 차고 민주질서를 유린하는 급진 소수파 후보가 아니다. 소수파의 정략이 합리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기준선’이라는 방책을 더 높이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