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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구사일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심장에서 머리로 피가 통하는 목줄에 생긴 혹 (총경동맥류)이 야구공 만하게 부풀어 파열직전에 있던 가난한 집의 한 소녀가 뛰어난 집도자와 독지가를 만나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건졌다. 지난 9일 상오「가톨릭」의대 외과교수 이용각 박사는 12세의 소녀 김순애양의 총경동맥류를 절제해내고 다시 동맥을 잇는 수술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외과술의 혜택을 죽음직전에 있던 한 소녀에게 베풀게된 데에는 우연의 행운이 곁들였기 때문이다.
김양은 양양군 양양면 서문리 l07에 사는 김유정(49)씨의 10남매 중 다섯번째 딸로 태어났는데 20일전부터 갑자기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목의 혹 때문에 몹시 시달림을 받게 됐다. 폐병으로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 김씨는 그래도 걱정이 되어 속초의 이기섭 (의박) 외과에 진단을 받도록 했다.
이 박사는 이것이 아직 우리 나라에서 한번도 치료에 성공된 일이 없는 총경동맥류임을 알고 급히 「가톨릭」의대의 이 박사에게 환자를 보냈다.
이용각 박사는 무료환자「티오」가 차서 시일을 좀 기다려야 한다는 사정 때문에 딴 종합병원에서 무료로 수술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봤으나 허사, 많은 애를 태웠다.
그때 마침 친지의 문병차 성모병원에 들렀던 허신구씨 (낙희유지 상무)가 그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허씨는 비용다과를 불문하고 급히 수술을 하도록 이 박사에게 당부했다. 이박사는 지체없이 김양을 수술실로 옮겨 다른 4명의 의사와 5명의 간호원의 도움을 받아 2시간 30분에 걸친 극히 「델리키트」하고도 복잡한 수술을 거뜬히 해치웠다.
총경동맥은 심장에서 머리로 통하는 피의 통로이므로 그에 생긴 혹을 수술하자면 심장 바로 위를 갈라 그 동맥을 잡아맨 다음 다시 혹이 생긴 자리를 갈라 혹을 떼내게 된다. 그러나 머리로 통하는 피를 차단하는 것이므로 대개는 수술도중에 환자가 죽거나 산다해도 반신불수 같은 불구자가 되기 쉽다.
이 박사는 19일 경과가 몹시 좋아 곧 퇴원할 수 있게된 김양을 보고 운 좋은 아이라면서 허씨의 고마운 원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고있다.
한편 허씨는 불치의 질병 때문에 죽어 가는 소녀를 우연히 알게되어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라면서 어떻든 어려운 수술이 성공되어 한 목숨이 건져진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이야기하고있다.
그리고 김양의 어머니인 정선숙 (44)씨는 기쁨을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면서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외과계에 또 하나의 개가>
이 총경동맥류 절제수술의 성공에 대해 연세대의대외과교수 이세순박사는 『우리 나라 외과계의 또 하나의 개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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