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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각내의 팽창정책에 [터치·아웃]된 3번타자|홍재무 사임의 저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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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총리·장부총리를 주축으로 삼고있는 현내각이 오늘로써 1년6개월 1주일을 기록, 풍우 짙은 우리의 정치기상권에서 한 내각의 구성체가 이처럼 장기화(상대적으로)하고 있다는 것은 헌정사상 보기 힘든 기록이기도하다. 그러나 이러한 내각수명의 장기화가 반드시 그들의 시책이 안정을 유지한 증좌라고 하기에는 그 시책음향이 너무도 거칠었다.
현내각이 전반적으로 순탄한 수명을 유지하고있음에 반하여, 유독 재무부장관 자리에서만이 세 번째나 돌풍 실은 진퇴문제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관심을 이끈다. 따지고 보면 현경제내각의 팽창적이고 숨찬 시책음향은 재무부장관의 사퇴라는 발작현상으로 나타났고 그때마다 경제 각료진의 시책성향을 집약적으로 투시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홍승희재무장관의 사퇴이유는 그 초점이 흐려진 채 많은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 전직 박동규·이정환 재무장관이 모두 장부총리의 팽창기질에 대항하여 안정과 긴축을 내세우다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례에 비추어 이번 홍재무의 경우도 그렇게 관련시켜보려는 관성이 작용되고 있다. 요컨대 홍재무의 표면상 사퇴이유는 금리현실화이후 과대한 여신팽창에서 빚어진 대 IMF와의 협약이 지켜질 수 없다는데 책임을 지게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지만 보다 심각했던 이유는 재무장관으로서 소임을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관측하는 사람도 많다.
즉 금리현실화 작업이 그가 해외여행 중에 치러졌다고 하지만 그 이후의 조정시책도 전부 장부총리 주도하에 운영된 것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주요소관 시책도 어떤 참견권에 침식당해 대외적으로는 재무부가 기획원의 부내조직처럼 격하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고, 거기다가 금리현실화에 따른 조정기금 50억이 이미 초과 대출되는 등 급격한 여신팽창으로 그가IMF 백여국과 약속한 8백55억원의 여신한도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국제적 체면 앞에 가로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홍재무로서는 지난봄 은행주주총회 때의 금융계인사 개편 때에도 외부의 간여 때문에 주무장관으로서 자율적인 업무집행을 할 수 없었고, 최근에는 국정감사·감사원감사 이외에도 총무처의 인사 감사·대통령 대명에 의한 조세특별감사·무임소장관실의 민원감사 등 모든 감사가 재무에 연속 집중되어 장관의 대외적인 권위문제가 부내 일부에서 터져 나와 온유한 은행가 기질로 정형화한 홍재무의 심경을 흐리게 했던 것이다.
특히 이번 민원감사결과 1백30명의 징계대상자중 49명(그중 19명은 파면)이 재무부산하에서 나타난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저운 속에 싸여있던 그의 심경을 더 한층 어지럽혔을 것이라는 것은 징계통고를 받은 바로 그날 정총리를 찾아가 사표를 냈다는 사실로써 추측할 수 있을만한 일이다.
그렇게 보면 역시 홍재무도 전직 박동규·이정환 재무장관의 사퇴이유와 비슷한 예라고도 하겠다. 비슷한 공세에 세번이나 물러난 [재상]의 자리, 과연 그 [피칭]을 막아낼 4번타자는 누구일까 하는 관심이 일고있다.
예산, 세법개정, 금리현실화 수습, [아은]각료 회담 참석, IDA조사단과의 협조 등 현시점에서 재무장관의 사퇴는 너무도 부조리한 실정-. 화재가 발생하면 화재원인에 더한 불평보다 우선 불부터 꺼놓고 스스로의 처신을 가름하는 전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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