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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 열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금은보석은 흔하지 않고 귀한데 그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희귀한 물건은 함부로 천하게 쓰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귀한 물건들이 잘 못 쓰여서 천해지는 경우가 있다.
값비싼 물건을 마음대로 지닐 수 있는 능력은 없으면서도 나는 보석상이나 골동품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윈도숍」을 타는 버릇이 있다. 언제나 눈요기로서 만족해야하지만 그런대로 한낱 즐거움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경우 진열장을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학생들이나 아는 분과 마주치면 열적은 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여자의 역점인 동시에 취미라면 취미로 돌릴 수도 있다.
요사이 이런 진열장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물건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순금으로 된 수저 술잔이 있는가 하면 금으로 만든 커다란 열쇠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해도 금 수저와 잔은 너무하다. 오히려 천해 보인다. 열쇠만 해도 그렇다.
그 목적부터 뚜렷하지 않다.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을 경우 그 시의 시장이 귀빈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그 시의 열쇠를 증정하는 예가 있다.
이런 경우에도 금으로 만든 열쇠를 꼭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밖의 용도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열쇠를 받을 만한 손님은 1년 동안에 몇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진열장에는 수두룩하다.
금은 국가적으로 볼 때 그 나라 부의 측정 단위로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결코 남들이 부국이라 인정해 주는 처지도 못 된다. 금이 이렇게 흔하게 나돌면 국고에서는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미국같이 세계에서 금이 제일 많은 나라도 일반의 사용은 제한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여자들의 패물도 십팔금 이하로 정하고 있는 줄 안다. 외국인들이 순금 목걸이· 팔찌·가락지·보석 반지 등을 함부로 사가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못 가져 배아픈 것보다는 차라리 그 석연치 않은 서운함에서였다.<이대 도서관장>【이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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