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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사태 이후 미국 · 일본과 비교되는 대응]

중앙일보

입력

미국 테러사태가 터진 지난 11일 이후 정부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회의를 열었고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테러와 이에 따른 미국의 보복 정도에 따라 비상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것에 머물렀다. 구체적 내용은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초에 확정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부가 이처럼 구체적 방안 제시 없이 '검토' 만 하는 사이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했다. 투자자와 기업의 불안한 심리가 시장에 반영된 것이다.

그 결과 정책당국의 위기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태 추이를 보겠다는 정부 입장을 이해하지만, 뜸만 들이며 실행방안을 내지 않고 미루는 바람에 내놓은 대책마저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결정한 콜금리 인하도 시장에선 때를 놓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경기회복이 당초 예상보다 적어도 1~2분기 늦어질텐데 정치권 눈치를 보며 재정지출 확대 등 필요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 어설픈 증시대책=대책에 따라 증시의 큰 흐름이 결정났다. 사상 초유의 테러를 맞은 미국 증시는 개장 첫날 나스닥과 다우지수가 7% 안팎 하락하는데 그쳤다.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도 12~14일 6.6% 하락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15.4% 하락했다.

지난 주말 이후 증시대책과 관련, 정부는 시장에 직접적 영향을 줄 만한 조치는 내놓지 않고 설익은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해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불러온 측면도 있다.

특히 정부 관계자들은 구체적 방안을 밝히지 않으면서 증시관련 펀드를 조성한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주가를 떠받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사주를 장중에 살 수 있도록 한 것도 미국의 대책을 따라간 느낌을 준다. 우리사주신탁(ESOP)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은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며 이미 시장에 알려진 것으로, 단기 대책이 될 수 없다.

◇ 뒷북친 금리인하=콜금리를 0.5%포인트 낮춘 19일 종합주가지수는 1.8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다른 나라가 금리를 내리니까 뒤따라간 측면이 있다" 며 "일본이 장기 불황을 맞은 이유 중 하나가 일본중앙은행의 대응이 너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교보증권 김석중 상무는 "예상보다 큰 폭으로 금리를 인하, 투자심리가 다소 호전되긴 했지만 시기를 좀더 앞당겼더라면 좋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 경기대책 미룰 여유 없다=테러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국내 경제의 회복 시기가 늦어지리란 전망이 우세했다. 따라서 재정지출 확대와 추가 금리인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테러사태가 터지자 민관 연구소는 한 목소리로 경기회복이 더 늦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그러나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 및 유동성 공급 확대만 거론하고 재정지출 확대 등 근본적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재경부 관계자는 "솔직히 경제전망을 하기 어려운 데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섣불리 재정지출을 늘린다고 했다가 부닥칠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말했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정치권의 달라진 환경을 인정해 야당에 재정지출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하고, 대기업 관련 규제완화 방안을 밝혀야 할 때" 라고 강조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추경예산의 전체적 규모만 나왔을 뿐 구체적 집행계획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며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문에 얼마를 집행할 것인지를 밝혀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 고 말했다.

금리나 물가와 관련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문건 전무는 "금리인하가 물가인상 등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걱정도 있지만 경제정책을 펴면서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며 "현 상황은 무엇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 판단해야 할 때" 라고 지적했다.

송상훈.이희성.정철근 기자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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